[문화와 사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 장정옥 씨

입력 2008-01-18 07:42:18

죽음에 대한 운명적 천착…"앞으론 따뜻한 얘기 쓸 것"

치열하다 못해 지독한 소설가가 있다. 대구의 중견 소설가 장정옥(51) 씨. '해무' '푸른 난파선' '그림자는 집이 없다'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만들지 않는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가 제40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 다소 침체 분위기였던 대구 소설계가 그녀로 인해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한결같이 "그래, 장정옥이 뭔 일을 낼 줄 알았어."라는 평이다. "처음으로 쓴 장편이 박완서 씨 등 쟁쟁한 여류 소설가를 데뷔시킨 공모전에서 당선된 것이 특히 기쁩니다."

당선작 '스무 살의 축제'는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있다.'는 글귀로 출발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외톨이가 된 스무 살의 고독한 서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짚은 작품이다.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울어줄 사람이 없다. 엄마와 동생은 멀리 떨어져 있고, 스무 살의 유리는 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생각 끝에 장례 대행업소에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위해 울어줄 사람을 부른다.

축제와 죽음이 대비를 이루는 이 소설은 흥미롭게 이별의 상처를 가진 두 남녀가 도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 줄거리의 맥을 이루고 있다. 타인에 불과했던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무 살의 축제'는 발품을 많이 판 작품입니다." 소설을 써 나가던 때에 맞춰 대구에서 도심 RPG(롤플레잉게임) 대회가 열린 것은 우연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게임 현장을 뛰어다니며 취재하는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함평 나비축제를 다녀왔는가 하면 부검현장도 지켜봤다. 함평까지 다녀온 것은 '스무 살의 축제'의 원래 제목이 '나비 축제'였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상존한다. 1993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쓴 첫 작품 '허물 벗는 세월'부터 죽 죽음에 천착하고 있다. 대구 반고개(두류 3동) 달동네의 째지게 가난한 집 7남매의 여섯째로 태어난 그녀의 주위에는 늘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날은 정월 대보름날이었어요.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밖을 보니 달이 둥실 떠있었어요." 삶도 죽음을 위해 스쳐가는 환영이 아닐까. "죽음을 벗어던지기 위해 죽음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 짧은 찰나의 환영을 소설로 옮겨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작품을 유심히 본 소설가 박희섭 씨의 권유로 반월문학회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3년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의 습작기간을 거쳐 1997년 마침내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해무'로 등단했다.

수십 편의 중단편을 썼지만 아직 작품집을 내지 않았다.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첫 장편을 쓰면서 호흡조절을 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몸무게가 45㎏으로 곤두박질쳐 병원을 찾기도 했다. "소설은 삶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죠."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처럼 다양한 삶을 허구라는 형식을 빌려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제 쓸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과 함께 안도감도 밀려든다. 이제 자신의 소설에 튼실한 심장을 달아준 것 같은 느낌이다.

"죽을 때까지 소설만 생각하고 죽겠다."는 그녀는 "앞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로 외롭고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스무 살의 축제'는 4월 초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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