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절벽 위의 호국성지, 진주성
■ 진주성…임란대 7만 백성 순절, 곳곳에 구국활동 자취
1592년 왜군 3만여 명은 진주성을 전면 포위하여 공격했지만, 성안에서는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군사와 백성 3천800여 명이 요새로 구축된 성에서 끈질긴 저항을 했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10만 여 명의 왜군이 몰려와 끝내 진주성은 함락되고 7만의 백성은 순절하였다. 이것이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 상황이다. 또 성벽 아래 남강 가에는 왜장을 끌어안고 목숨을 던진 의기 논개의 충절이 새겨져 있는 의암이 있다. 이처럼 진주성과 남강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다.
진주성은 고려 말 빈번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토성이었던 것을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석축하였고, 조선 선조 24년(1591년) 경상감사 김수가 백성들을 동원해서 성을 쌓고 참호를 파 완성했다. 성곽의 둘레는 1천760m이고 높이는 5~8m에 이른다.
이곳 성벽을 따라 걸으면 장졸을 지휘하기 위한 촉석루, 적진을 관망하기 위한 북장대와 서장대, 적진으로 발포하기 위한 포루, 성의 정문인 북쪽의 공북문 등의 군사시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촉석루는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루로 꼽히는데, 직접 이곳에 올라 남강과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한 번 감상해 보라.
그밖에도 성내에는 호국성지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장소가 많이 있다.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의기 논개를 기리기 위한 의암사적비와 의기사, 의병의 뜻을 기리는 쌍충사사적비, 호국사, 창렬사,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등이다. 여기에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을 찾아 둘러보면 우리 조상들의 구국활동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시민들은 관광객에게 안내하고 싶은 진주의 상징적 장소로서 진주성을 추천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떠올리면서 진주성을 역사적 현장으로서 의미 있게 여긴다. 임진왜란 당시의 호국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이곳에서는 진주논개제와 진주남강유등축제 등의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촉석루 넓은 마루에 올라 탁 트인 시야의 그림 같은 남강을 내려 보면서 임진왜란 당시 처절했던 이곳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백승진(영남삶터탐구연구회, 대구서부고 교사)
참고자료 : 삶터탐구활동 길잡이(대구남부교육청)
◆진주성에 대한 Q/A
▷진주성 입지의 지리적 특징은 무엇인가?
진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지방행정의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낙동강의 주요 지류인 남강의 넓은 범람원을 배후지로 하면서, 가항종점이 되는 교통상의 요지에 위치한 진주성은 군사적인 입지에서 중심지적 특성을 가졌다. 진주의 성장도 진주성이라는 군사적 거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진주성은 남강변 구릉 지형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고 남강을 둘려 해자를 만든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요새이다. 남쪽은 큰 강에 인접하여 적의 침투가 거의 불가능하였고, 서쪽은 높은 절벽에 의지하고 있다. 북쪽은 남강의 배후습지성 늪지가 가로 놓여 있다. 이런 구릉지에 있는 진주성은 세 방면으로 지형의 험준함에 의지하고 한 면에만 적을 맞는 천혜의 요새이다.
▷진주대첩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1592년 10월 왜적이 침략했을 때, 진주목사 김시민은 불과 3천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으로 3만여 명의 왜적을 물리쳤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그것은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진주성을 지킴으로써 왜적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김시민장군과 진주성민들의 처절한 수성에 의한 결과물이며 왜군이 진주성에 집중되지 못하게 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견제 활동에도 힘입은 것이다. 호남지방의 곡창지대를 점령하지 못하게 저지한 이 전쟁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의암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나?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병이 촉석루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를 벌일 당시 왜장인 게야무라 로쿠스케는 이 자리에 기생 논개를 불러냈다. 논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왜장을 촉석루로 유인해 남쪽 비탈 아래의 강변으로 내려갔다. 강변의 바위에서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춤추는 시늉을 하다가, 가락지를 낀 손으로 왜장을 껴안고 푸른 남강 물에 몸을 던져 왜장과 함께 강물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나라에서는 논개를 의기라 부르고 강가에 사당을 세워 그 충절에 고개를 숙이며 칭송했다.
시인 변영로는 '논개'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후략)
◆주변에는 이런 곳도 있어요!
▷진양호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 형성된 서부 경남의 유일한 인공 호수인 진양호는 고도 진주의 자랑거리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진주의 대표 관광지이다. 주변에는 전망대, 선착장을 비롯하여 동물원, 어린이 동산 등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경상남도 수목원
지역 수목원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2000년에 완공한 경상남도 제1호 수목원이다. 식물 1천500여 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테마공원, 테마숲길과 함께 산림박물관과 야생동물원, 잔디광장, 산책로 등이 있고, 그 규모가 56ha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라 하겠다.
▷우곡정
우곡정은 고려 말 대사헌을 지냈던 우곡 정온이 조선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지내고자 태조 2년(1393년)에 지은 정자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대문 밖 앞뜰에는 낚시하던 연못을 예전의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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