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아, 을숙도 -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입력 2008-01-15 07:59:09

폭풍우는 끝났다. 60년래 처음이니 뭐니 하고 수다를 떨던 라디오와 신문들도 이젠 거기에 대해선 감쪽같이 말이 없었다. 그저 몇몇 일간 신문의 수해 구제 의연란(義捐欄)에 다소의 금액과 옷가지들이 늘어갈 뿐이었다.

섬사람들의 애절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육십이 넘은 갈밭새 영감은 결국 기약 없는 감옥살이로 넘어갔다. 그리고 새학기가 되어도 건우군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일기장에는 어떠한 글이 적힐는지?

황폐한 모래톱 ---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整地)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김정한, 부분)

낙동강 하류의 조마이섬(을숙도) 사람들의 한(恨)은 바로 땅이다. 자기네 땅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조마이섬은 식민지 시대 때 동양척식회사의 땅으로, 그 후에는 문둥이 수용소로 소유자가 바뀌었다. 건우네도 그렇다. 외세의 압제와 제도의 불합리에 말미암아 오늘에 이르도록 토지 소유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산다. 건우는 아버지가 6·25전쟁에 나가서 죽고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 어머니와 같이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장마가 닥치고 강둑을 파헤치지 않고는 조마이섬 주민들이 살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 된다. 갈밭새 영감이 행동에 나선다. 이때 유력자의 앞잡이인 청년들이 나타나 이를 방해하자 그 소행에 화가 난 갈밭새 영감이 청년 하나를 탁류에 던진다. 이로 인해 영감은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건우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는 이처럼 조마이섬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왜곡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고난을 드러낸 작품이다. 사실 조마이섬은 낙동강 하류의 특정한 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 한국 사회의 실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김정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황폐하고 참담한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캄캄한 절망에 빠져 살아가지는 않는다. 출구를 찾아 끊임없이 투쟁한다. 이러한 고발과 저항의 정신을 담은 김정한의 작품 창작은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가능해진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친일의 욕된 대열에 합류하는가 하면 일본어로 소설을 쓴 작가들조차 생겨난다. 이런 추세를 등지고 김정한은 단호히 절필(絶筆)한다. 는 절필 26년 만에 나온 문단 복귀 작품으로 절필 이전 대부분의 작품세계를 일관하는 고발과 저항의 정신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겨울 을숙도에 도착했다. 이미 을숙도는 섬이 아니었다. 낙동강 하구둑이 섬을 가로지른 지도 이미 20년이 넘었다. 남단과 북단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까마득했다. 9천900여㏊(3천만 평)의 땅덩어리, 을숙도는 갈대와 억새, 그리고 철새와 흙과 물의 천지라고 어느 책에 적혀 있었다. 여전히 갈대는 보였지만 현대식 건물과 인공으로 조성한 조형물들에 의해 오히려 초라했다. 을숙도 문화회관, 조각공원 등이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연못까지 인공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남쪽으로 가면 넓은 갈대밭과 습지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포기했다. 그건 책에 나오는 을숙도의 아름다운 묘사나 사진 속의 풍경으로 그려진 을숙도의 꿈을 내 속에서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의 움직임이기도 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차를 돌렸다. 그 섬에 살았던 소년 건우는 끝내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개발한다는 공약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만은 공약(空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바람일까? 결국 는 사방이 사람들에 의해 포위된 생태의 낙원 을숙도를 지키며 우리가 계속 써내려가야 하는 연재소설이 될지도 모른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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