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N양에게

입력 2008-01-08 07:20:13

새해가 바뀌었는데도 날씨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군.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파고드는 바람이 여간 매섭지 않네. 수능이 끝난 지 벌써 두 달이 가까워 오는 데도 아직 합격의 기쁨을 얻지 못하고 초조하게 논술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자네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깝구려. 3년 동안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저주받은 89년생. 언젠가 자네가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일컬었지. 중학교 3학년 때 '내신 위주로 대학에 진학하도록 만들겠다는 교육부의 정책 발표를 통해, 내신이 유리한 고등학교를 고르기 위해 부모님과 밤새도록 고민을 하다 전쟁처럼 중간·기말고사를 치르겠다는 각오를 새기며 우리 학교에 왔지. 같은 반 친구들이 경쟁자로 느껴지는 학교 시험 기간은 자네에게 괴로움 그 자체였을 거야. 하지만 2학년이 되자 "내신 실질반영률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말에 수능시험을 위해 또 전력을 기울였어. 그러다 자네 학년 중에 유난히 자퇴를 선택한 학생들이 많았지.

얼마 뒤 "변별력을 위해 논술 시험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우리가 실험대상이냐"라며 결국 전국의 모든 89년생 수험생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어. 내신과 수능, 그리고 논술. 죽음의 트라이앵글 속에 예측할 수 없는 입시 정책에 벌벌 떨어야 했던 자네가 스스로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자학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네. 최근에는 수능 성적표에 등급만을 표시하는 제도가 이슈야. 수능 점수 대신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변별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원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어.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선 새로운 죽음의 무언가가 나올까 더욱 염려되네.

내신과 수능, 그리고 논술의 삼각파도를 자네 혼자서 견뎌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군. 1940년에 쓴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가 생각나. 수업시간에 다룬 적도 있지만, 자네의 절박한 처지와 이육사 선생의 민족 말살이라는 극한적 위기 상황이 일치되는 것 같아. 이육사 선생은 절박한 처지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초극의 의지를 가졌지. 자네 역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배수의 마음으로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각오를 다져보길 바라네. 자네의 '무지개'가 떠 오르는 그날, 마음껏 같이 웃어보세.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2008년 1월 1일 담임선생님이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sam35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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