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열전의 薛聰(설총)편을 보면 신라 神文王(신문왕)과 小性居士(소성거사) 설총의 화담 일절이 나온다. 설총은 갓 부임한 화왕 牧丹(목단)이 백화의 문안을 받는 장면을 은유하면서 장미의 아름다움과 白頭翁(백두옹·할미꽃)의 능력을 두고 갈등하는 왕에게 일침을 가한다. 척박한 들판에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해충제거에 필요한 독을 만드는 백두옹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다행히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당선자는 갈등하던 화왕과 달리 당선소감에서 "매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백두옹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이며, 들판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이다. 무척이나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이제 공은 백두옹에게 넘어왔다. 누가 척박한 들판의 백두옹으로 남을 것인가? 대통령 당선발표 이후 대구·경북지역은 장밋빛 몽상들로 가득하다. 오랜 가뭄에 단비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라 하더라도 해도 너무 한다. 소외받은 자의 설움을 한풀이 하듯 엄청난 요구들을 토해내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도 좋고, 경북 동해안 부흥도 좋다. 그러나 냉정해질 때다. 아랫돌 빼어 윗돌 괴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물고 물리는 빚잔치에 허덕인 지난 십 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조그만 상처가 났을 때는 그 상처에 맞는 약을 그때그때 처방하면 되지만 종기가 온몸에 퍼져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상처치료에만 연연해서는 안 된다.
급한 상처를 치료하려고 독한 약을 처방하면 상처는 치료할 수 있지만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지금 한국이 당면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대내외적으로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전쟁 종결문제가 북핵문제와 맞물려 돌아가고, 개인에서 기업까지 무한경쟁의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민의 생채기를 돌아볼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백두옹이 되어야 한다.
대구·경북민의 정치적 선택은 결과가 아니라 출발임을 명심해야 한다. 일꾼을 뽑았으면 일 할 수 있는 시간과 힘을 주어야 한다. 요구가 아니라 지지를 보낼 때이다. 경제 대통령 선택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한다. 성장정책에 한 표를 던진 것은 희생에 대한 동의이다.
지난 10년간 분배중심 정책으로 고갈된 국고를 보충하고 새로운 성장드라이브를 주도하라는 주문이다. 성장정책은 사회자본이나 세금을 발전과 개발에 집중한다는 의미이고 상대적으로 개인에게 분배되는 직접적 혜택은 줄어든다. 지역민의 의무는 바로 이것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성해야 한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중추였던 대구·경북이 왜 낙후되고 뒤처졌는가를 돌이켜봐야 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세상이 냉전시대를 벗어나 세계화시대에 진입하고,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지역은 보수의 늪에 빠져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들이 생활 깊숙이 함께 하는데도 너무나 배타적이다. 발전에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된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이다. 설사 정책적 배려가 있더라도 감당할 능력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면 무용지물이다.
가장 시급한 것이 각자의 마음을 여는 일이다. 지역이 사통팔달의 교통로가 되고 물류의 중심으로 부흥하려면 사람이 모여야 한다. 사람이 오면 상품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겨울인데도 대구·경북지역 들판에는 장미가 가득하다.
계절을 고려하면 백두옹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장미는 어쩐 일인가? 상응해야만 상생할 수 있다 했다. 머슴이 주인을 잘 섬기려면 주인도 제 몫을 해야 한다. 대통령 뽑은 일을 마치 투기나 투자로 여기는 자 부지기수다.
논공행상의 잔치 상에 떡고물이라도 받으려고 혈연·지연·학연의 연고를 캐는데 혈안이다. 욕심 많은 호랑이가 썩은 동아줄을 잡고 하늘에 오르다 떨어져 죽었다는 동화가 새삼스러운 것은 왜일까? 17대 대통령 당선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장미입니까, 백두옹입니까?"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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