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세상]여름궁전

입력 2007-12-13 15:40:51

"혁명은 사랑이다"

때로, 어떤 영화들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 먼저 들어와 박힌다. 그래서 생각이나 관념이 바뀌는 게 아니라 영혼이 살짝 어디론가 이동해 버린다. 심장이 들은 언어이기에 이유를 설명하자면, 힘들다. 그래서 그 이유들은 길어진다. 세상에 어떤 언어도 심장과 영혼을 움직인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게다가 불충분하다. 마치 언어화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듯 완전한 이성의 알리바이로 그런 작품들은 오롯이 존재한다. 2006년 가을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여름궁전'도 그랬다.

정치적 맥락으로서의 독법도 물론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여름궁전'은 사랑 영화다. 로맨스 영화나 멜로 드라마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여름궁전'은 사랑, 게다가 젊은 시절의 열정적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때로 혁명은 사랑의 심리와 닮아 있다. 변화에 대한 열렬한 갈망, 그것이 곧 혁명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이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혁명은 실상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다.

영화는 베이징 대학의 입학허가서로부터 시작된다. 마치 고향이라는 족쇄, 가족이라는 구속복을 벗어던지듯 유홍은 자신의 처녀성을 폐기처분한다. 10대여 안녕, 구질구질한 고향이여 안녕, 순결이여 안녕,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떠난다.

유홍이 도착한 북경대학은 새로움에 대한 열기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유홍의 일기에 쓰인 말처럼 "환각"에 가까운 도취상태이다. 학생들은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우고 여학생 기숙사에는 섹스를 하기 위해 잠입한 남자들이 무시로 드나든다. 섹스는 자유의 구호처럼 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간다. 자유가 밀교가 된 북경대학의 행동수칙은 자유로운 섹스로 응축된다.

방탕하지만 순결한 영혼들이 가득 찬 북경대학에서 유홍은 타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번잡한 곳을 떠나 홀로 담배를 피우며 노트에 자신의 일기를 적어내려 간다. 사람들이 몸으로 순간을 기록하려 할 때 그녀는 문자 위에 자신을 각인하고자 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저우 웨이를 만나게 된다. 문제는 그가 아무 것에도 거칠 것도 주저할 것도 없는 남자라는 사실, 그는 내츄럴 본 자유인이자 뼈 속까지 구속받고 싶어하지 않는 자라는 사실이다.

영혼의 지침을 돌린 단 한 번의 키스처럼 저우 웨이는 그렇게 유홍의 삶을 바꿔 놓는다. 대학을 자퇴하고 지방 도시를 전전하는 그녀는 숨가쁘게 변화하는 중국의 현재와 함께 무참히 흘러간다. 하지만 한편 젊음도, 혁명도 그렇다. 날카로운 키스처럼 그렇게 혁명, 열정, 젊음은 다가와 의미화 되기 이전에 상처를 남겨두고 사라진다. 뜨거운 화인이 된 과거는 미래를 저당잡는다. 그렇게 뜨거웠던 젊음은 현재의 상흔이 되어 지속된다. 젊음은 혼돈과 불안으로 점철된 달콤한 불온의 시기이다.

서로를 껴안고 흥분에 마지않던 천안문 사태 전야, 여름 궁전 호수 위에 띄워 놓은 보트에서 석양을 받으며 서로의 체온에 기대였던 연인들, 실상 모든 혁명의 언어는 사랑의 갈구와 다르지 않다. 반짝 반짝 빛나는 수면의 추억이 고통스러운 환각과 자멸감을 안겨주듯 그렇게 혁명에 대한 열정은 역사와 맞부딪쳐 상처를 준다. 혁명이란, 결국 사랑인 셈이다.

강유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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