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다례원 배근희원장과 딸 김길령씨

입력 2007-12-10 07:11:22

'모녀 이전에 사제지간 이죠"

청백다례원 배근희(71) 원장은 25년간 수많은 차인(茶人)을 배출해낸 차의 원로이다. 도자기가 좋아 차를 알게 된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17개 차 지회를 배출할 만큼 차 보급에 힘써왔다. 그는 1985년부터 매년 5월엔 '원효선사 탄생 다례제', 7월엔 '일연선사 추모 다례제'를 빠뜨리지 않고 자비로 연다.

뿐만 아니라 전임 대구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걸스카우트 이사장, 청소년예절교육 자원봉사단 단장 등을 맡아 봉사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바쁘다.

김길령(47) 씨는 원광대 박사과정 논문을 준비 중이다. 주제는 '영남지역 불천위 제례'. 그는 밤늦은 시간 종가의 문을 두드려가며 종가의 제례를 연구한다. 심지어 오전 5시에 종가 제사가 있을 때면 밤을 꼬박 새기 일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차의 매력에 더욱 빠져든다. 차는 '종합예술'이고 1700년대 우리나라 제사 차례에 '다례(茶禮)'가 있었다며 학문적 희열을 토해낸다. 김 씨는 배 원장의 딸이다.

이 두 여인은 차를 통해 맺어진 사제지간이다. 또 한 사람은 풍부한 현장 경험, 또 한 사람은 학문적 이론으로 무장한 동지이기도 하다. 사실 김 씨가 차의 길로 접어든 것도 배 원장의 반 강제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차가 싫었어요. 다도가 마냥 지루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죠?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문화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김 씨는 이젠 어머니의 제자이자 그림자 역할을 자처한다.

같은 영역에서 어머니와 딸이 함께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을 터. 이들은 역할이 자연스레 분담돼 있다. 배 원장은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반면 김 씨는 다례원 안팎의 일상을 꼼꼼하게 챙긴다. "제가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아요. 거절 못 하는 어머니가 'OK' 하셔도 제가 뒤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많거든요."

두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성격도 참 많이 다르다. 어머니 배 씨가 한 마디 툭 던지면 김 씨는 이를 매끄럽게 받아 모양새를 만든다.

"딸까지 차를 한다고 하니, 남편이 걱정하더군요. 남편이 저를 뒷바라지했던 것처럼 사위도 딸을 도와야 하니까요. 그래도 모두들 저를 부러워해요. 전국적으로도 딸이 어머니의 차 생활을 잇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배 회장은 좋겠다, 딸이 있어서'란 말을 들을 땐 더 뿌듯해지죠."

차에 대한 열정은 어머니와 딸이 다르지 않다. 배 원장이 차를 실질적으로 보급·확대해왔다면, 김 씨는 그것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두 모녀는 이런 마음을 합해 차문화원을 세우는 것이 꿈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 3국의 차문화를 직접 시연할 수 있고, 다구·복식 등 관련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학문적 성격도 갖춰야 한다. 어머니 배 원장이 평생 모아온 자료와 도구들이 토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차 역사는 조선시대와 일제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겼어요. 이제 다시 차 역사를 부흥시키는데 우리 모녀가 중간 고리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세정기자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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