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Life씨] 내부고발 그 이후

입력 2007-11-29 11:39:22

능력 폄하, 해고 수순…"죽고 싶었다"

KT의 내부비리를 고발했다가 해직당한 여상근씨.
KT의 내부비리를 고발했다가 해직당한 여상근씨.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실행위원이자 보건학자인 신광식씨가 쓴 '불감사회'라는 책에는 공익제보자 9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부고발을 결행한 뒤 사회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고 얼마나 큰 심리적·신체적 스트레스를 받았는지에 대한 연구서다.

이 책에 등장한 9명 중 1명은 자살, 1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병고로 사망, 6명은 자살유혹을 느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또 7명이 정신적 충격 증상을 보였으며, 그 중 6명은 불면증, 위궤양, 급격한 노화현상, 만성피로 등의 육체적 고통을 호소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실신해 운전 중 정신을 잃어 내형 교통사고를 낸 사례도 있었다.

'조직의 쓴맛'도 뼈저리게 겪어야 했다. 제보자의 능력·성실성·도덕성을 폄하하고, 의리 없는 자로 매도하며, 심지어는 제보 동기를 불순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기본이다. 징계와 해고도 잇따랐다. 9명 중 5명은 쫓겨난 뒤 복귀투쟁을 벌였고, 3명은 복귀를 포기했으며, 명예롭게 전직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고통은 꼬리표처럼

이런 사례는 대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KT의 내부비리를 고발했다가 해직당한 여상근씨. 그는 2005년 8월 KT가 서울~대구 간 고속도로 철도 주변 전력유도대책 사업을 추진하면서 잘못된 공사방법을 적용해 600억원의 국가 예산을 낭비했다고 청렴위에 신고했다. 청렴위는 이를 감사원에 넘겼고, 감사원은 다음해 6월 여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공사 방법을 바꿀 것을 권고하고 관련자에게 주의 조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여씨는 감사원의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지 6일만에 KT에서 쫓겨났다. 여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복직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청렴위가 "KT의 파면 조치는 부패행위 신고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을 금지하는 부패방지법 32조 1항에 위배된다"고 여 씨의 복직을 권고했지만, 민간기업인 KT는 청렴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KT는 여씨를 상대로 '1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중이다. 여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경영진을 비방해 회사 명예와 공신력을 실추시켰으며, 인터넷에 기업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이 KT측의 주장이다. 여 씨는 지난해 제6회 투명사회인상(한국투명성본부)과 올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여전히 무직이며 법적 소송과 씨름중이다.

▷공익제보자, 우리가 껴안아야

하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냉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익제보자들에 대해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을 껴안기 위한 모임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

그 좋은 사례가 황우석 박사의 거짓을 폭로했다가 해고된 연구원 K씨의 경우다. 인터넷 상에서 그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각종 사회단체들이 발벗고 나서 릴레이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구지역에서도 올 초 경실련을 중심으로 '공익제보자 여상근과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꾸려졌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여상근씨의 사례를 좀 더 널리 알려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며 "그가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에 처해있어 앞으로는 모금 활동까지 벌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조 처장은 "공익제보자는 배신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발벗고 나선 소신있고 용기있는 시민의 한명일 뿐"이라며 "많인 시민들의 동참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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