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시평] 1987년의 기억, 2007 대선 단상

입력 2007-11-07 09:32:52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씨의 '대선 3수 선언'이란 돌발 변수에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어쩌면 싱거운 승부로 끝날 수도 있었던 2007년 한국 대선 판도에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막판까지 변수가 많고 콤팩트(compact)하게 진행돼 매우 흥미롭다"는 주한 미 대사 버시바우 씨의 논평은 단순한 방관자적 구경꾼의 내심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위와 같은 구경꾼의 관전평 속에는 우리의 앞날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땅에 사는 우리의 내일을 좀 더 발전된 사회로 만들자는 입장에 서서 보면 여러 가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후보자의 자질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라는 선거의 본질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선거 막판의 후보자들 간의 이합집산이나 뒷거래를 통한 야합에 따라 최종 승자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최종 승자의 득표율이 35% 내외에서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선거 후의 전리품 분배와 관련하여 승자들 내부의 다툼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둘째의 경우에는 승자에게 민주적 정통성 즉 다수의 대변자라는 권위의 결여를 걱정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1987년의 대선을 통하여 그러한 경험을 하였고, 그 후의 정국 상황의 전개 과정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기억도 가지고 있다.

이번 대선의 경우에도 이러한 상황이 내년 4월의 총선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선 승자에게로의 일시적 여론의 쏠림 현상도 예상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예측 불능의 상황 전개로 보아서 그러한 쪽에 상당한 개연성을 두어야 할 것이다.

2007년 대선 결과가 2008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에까지 연결된다면 정정 불안의 결과는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혹자는 "이제 한국의 미래는 정치인에 의하여 결정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도 할 것이다. "정치가 아무리 '깽판' 쳐도 경제는 경제주체와 시장 참여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잘 굴러갈 것이고, 사회 문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예정 조화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등으로 낙관론을 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과 앞으로의 20년은 상황 면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주변 정세는 매우 안정적이었고, 거대 중국의 경제적 성장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누려왔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남북문제도 북한 사회 내부의 안정을 발판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여 왔다.

앞으로의 주변 상황은 이러한 호조건의 연속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 북경 올림픽 개최 이후 중국은 고도성장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대 중국이 내부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면 한반도에 미칠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이러한 상황에 닥쳤을 때 무엇보다도 정치권이 안정되어 있어야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름 없는 지방대학 교수'의 처지에 지금 너무 무거운 담론을 들먹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금의 정국 전개 상황에서 대구와 경북민의 선택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의 여러 차례 대선에서 그들의 표심은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을 위한 주머니 속의 표, 하나의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그들은 별다른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다른 지역민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원칙과 의리를 지켜왔다.

우리들은 다시금 전략적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한 전략적 선택을 통하여 민주주의 원칙과 과거의 우리들의 신뢰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특정세력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권혁재(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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