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English" 중학생 영어연극 경연대회

입력 2007-11-06 07: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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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야 놀자.' 지난 2일 대구서부교육청 주최 제7회 중학생 영어 연극 대회에 참가한 대구 관음중 학생들이 '신 춘향전' 공연 시범을 보이고 있다. 관음중은 이날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흔히 중학교 과정을 어중간하게 낀 과정이라고 부른다. 초등학교에서 막 올라온 중학생들에게 고교생처럼 본격적인 입시 준비 수준의 강도 높은 수업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초등학생처럼 마냥 재미에만 초점을 맞춰 수업을 한다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어처럼 기본기가 중요한 과목에서 학생별로 실력 차가 커지는 시기도 바로 중학교 과정이다. 특히 요즘처럼 선행학습이 일반화된 학교에서는 격차가 더 심각하다. 어디에 수준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중학교 교사들의 하소연이 나올 만하다. 그중에서도 영어는 대학입시뿐 아니라 사회인이 돼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목. 학생들이 모처럼 영어와 뛰어노는 현장을 찾아봤다.

▶영어야, 즐기면서 친해보자

"Today we would like to present new Choonhyang Jeon in English. It's 1680 in the Chosun dynasty. There lived, Namwon, a Satto who had a son named Lee mongyong.(오늘 저희들은 신 춘향전을 영어로 선사할까 합니다. 1680년 조선. 이몽룡이라는 이름의 사또 아들이 살았습니다.)"

대구 서부교육청 주최 '중학생 영어 연극 경연대회'가 열린 지난 2일 대구시 북구청소년회관 아트홀. 도포를 그럴싸하게 차려입은 학생의 해설로 영어판 춘향전의 막이 올랐다. 10여 분짜리 짧은 연극이었지만 막힘없는 대사와 잘 짜맞춘 안무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연습한 표가 확연히 드러났다. "여름방학 때부터 준비했어요. 처음에 한국어 대본을 익히고 나니까 영어 대사도 술술 나오던 걸요." 이날 첫 무대를 장식한 관음중학교의 이수형(몽룡 역) 양은 분장 위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유치원 때부터 디즈니 만화 영어 테이프를 즐겨들었다는 이 양은 발음도 훌륭했다. 변학도 역을 맡아 객석의 박수를 받았던 김지은 양도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대본을 만들었다."며 "긴 영어 대사도 문장을 통째로 외워보니까 의외로 쉬웠다."고 했다. 교실 수업에서 독해를 위해 무미건조하게 읽어야 했던 문장들에 감정과 억양이 실리자 생동감 있는 대화로 변했다. 학생들 스스로도 그런 변화를 깨닫고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날 출전한 8개 팀 학생들은 모처럼 영어와 제대로 놀았다. 영어 단어 쪽지시험이 죽기보다 싫고, 어려운 문법용어에 좌절하던 모습은 무대 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왕따 이야기를 다룬 '외톨이'로 무대에 오른 서부중학교 김미란 양은 "영어 문장에서 관계대명사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직접 대본을 쓰고 외워보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며 "영어가 이렇게 즐거운 적이 없었다."고 했다. 중학생 나이지만 발음이나 문장 구사력이 원어민 뺨치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동변중학교 3학년 송승호(대구외국어고 특차 합격) 군은 초등학교 6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건너갔다 중1 때 돌아왔다는 송 군은 "처음 한국 학교 수업을 접했을 때는 너무 딱딱했다. 미국에서처럼 이런 학생 참여 활동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영어 이래서 어려워요

"1학년 영어 수업을 해보면 알파벳을 더듬거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미 중 2, 3학년 수준의 문법을 아는 학생들도 있어요. 이런 격차를 고교생이 되기 전에 좁히지 못하면 영어 때문에 낭패를 볼 수밖에 없어요." 나경미 관음중 교사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 격차가 현실화된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학생들에게 영어는 여전히 어려운 과목. 중학교 학생들은 어떤 부분을 가장 어려워할까. 나 교사는 "문법과 단어 암기"라고 꼬집어 말했다.

실제 영어연극제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비슷한 답을 했다. 관음중 조한별(춘향 역) 양은 "중학교 올라오면서 갑자기 영어가 어려워졌어요. 독해는 어렵지 않은데 조동사, 빈도부사, 문형 같은 문법 용어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이은지 양도 "영어학원에서는 학교보다 더 많은 문법 내용을 단기간에 몰아서 배운다."며 "초등학교 때 생활영어 위주로만 배우다가 갑자기 문법이나 단어를 암기하려니 너무 낯설었다."고 했다.

영어 교육 담당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말하기, 표현 위주의 영어 수업에 못지않게 외우고 생각하는 영어 공부도 필요한데 요즘 중학생들은 소홀히 한다는 것. 한국에서 똑같이 영어를 배운 학생들 사이의 영어 격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한명훈 서부교육청 장학사는 "말하기의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문법이나 암기를 너무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등 영어 학습의 전 영역은 문법 실력이 밑바탕이 되지 않고는 일정 수준에 오르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 학교 영어 시험에서 문법 자체를 묻는 문제는 거의 사라졌지만, 문맥을 보고 보기 문장 끼워넣기, 단락 순서 재배열하기 등 긴 지문을 빨리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독해력의 기초가 되는 문법 실력이 더욱 중요시된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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