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낙엽길의 조화…함양 상림

입력 2007-10-24 07:27:51

▲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인 함양의 상림은 가을에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가을의 상림은 숲 전체가 붉고 노랗게 물들고 길에는 두툼한 낙엽이 깔린다.(함양군청 제공)
▲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인 함양의 상림은 가을에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가을의 상림은 숲 전체가 붉고 노랗게 물들고 길에는 두툼한 낙엽이 깔린다.(함양군청 제공)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스팔트 길에 스산하게 낙엽이 구르는 도시의 가을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숲길에서 만나는 가을은 다르다. 떨어진 낙엽들이 카펫처럼 길을 덮고 있는 숲에 가을 햇살이 퍼지면 다갈색 낙엽이 진홍 단풍보다 훨씬 더 가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지금, 경남 함양의 상림숲을 찾아가보자. 밭을 가는 농부들을 만나고 추수가 끝난 논자락의 볏집 태우는 냄새를 맡으면서 떠나는 가을여행 길에서는 도처에 가을 정취가 가득하다.

전국에는 철마다 빼어난 정취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숲이 많다. 그러나 함양의 상림만큼 지역민의 자부심과 애정이 짙게 밴 숲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아름다운 숲에 지금 가을이 내려와 한창 제 빛을 내뿜고 있다. 상림은 어느 때가 더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계절별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그 중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애착을 갖는 때가 가을이다. 숲 전체가 붉고 노랗게 물들고 길에는 두툼한 낙엽이 깔린다.

상림은 함양읍 대덕리 위천을 따라 폭 80~200m, 길이 1.5km가량 펼쳐진 숲이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말 함양 태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이 홍수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 만들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천연기념물(154호)로 지정돼 있다. 대관림(大館林)으로 불렸으나 숲 가운데 쪽이 훼손돼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게 됐다. 하림은 거의 자취가 사라져 강변에 선 고목 한두 그루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상림은 나무들이 죽고 나기를 거듭하며 천 년 세월을 버텨왔다.

여행객들에게 이 숲은 편안함을 선사해준다. 상림 숲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단풍은 강렬하고 화려하게 단장한 단풍잎 무리가 아니다. 은은하게 물들어가는 울창한 숲과 가을빛으로 변한 나뭇잎들이 흩날리며 푹신한 낙엽길을 이루는 가을빛의 조화를 말한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 상림이 지금 가을 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들로 나날이 아늑해지고 있다. 하염없이 거닐고 싶은 단풍길, 낙엽길이 펼쳐진 곳이다. 초록에서 노랑, 노랑에서 다갈색으로 차분하게 빛깔을 바꿔가는 참나무류의 이파리들이 가을 햇살에 매혹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함양의 상림은 되도록 이른 아침에 찾아야 한다. 숲길은 아침이면 바로 옆 위천에서 뜸을 들이고 올라온 물안개로 은은하게 빛난다. 아침 햇살이 밝아오면서 낙엽과 나무에 흥건히 맺힌 이슬을 비추는 풍광이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숲에 깃든 산새들의 지저귐은 운치를 더해준다.

노을이 물드는 저녁 무렵도 좋다. 한낮에 하늘을 가린 넉넉한 숲을 헤집고 어렵게 비쳐든 한줌의 빛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단풍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모습이 그림 같다.

숲 가운데 물길이 있어 가을숲은 촉촉하다. 벤치에 앉아서 빙글 돌며 떨어지는 낙엽을 감상해도 좋고, 발 밑에서 서걱이는 낙엽의 감촉을 느끼며 산책을 해도 좋다. 산책길에는 120여 종의 나무 2만 그루가 빽빽하다. 다람쥐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나무 위를 내달린다. 다람쥐들은 웬만해서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도시 곳곳에서 공원이 조성되고 숲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상림의 분위기는 그런 숲과는 격이 다르다. 그 격은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것이다. 오래 묵은 숲의 아름드리 수목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정취는 한두 해의 시간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함양은 민족의 명산인 지리산과 덕유산을 품에 안은 곳으로 빼어난 계곡들이 많다. 지리산 자락 마천면의 칠선계곡·한신계곡·백무동계곡 등이, 덕유산 줄기 기백산 자락의 안의면에는 화림동계곡과 용추계곡·용추폭포 등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하지만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소문난 곳이다. 특히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에 있는 심원정, 농월정, 군자정, 용추정, 거연정, 동호정 등의 8개의 이름난 못에 8개의 정자를 지었다는 이른바 '8정 8담'은 조선시대 정자문화의 풍류를 보여준다.

▶가는 길=88고속국도 함양IC에서 빠져나와 10분 정도 달리면 함양읍내에 닿는다. 함양 군청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 병곡방향으로 약 1.5km 지점에 있다. 문의 055)960-5555(함양군청)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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