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면] 사형제 폐지

입력 2007-10-16 07:59:52

사형제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워낙 중요한데다 오래된 사안이어서 학생들로서는 반드시 정리해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을 끝으로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어 10년이 되는 올해 12월 29일에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인권단체들도 이에 맞춰 지난 10일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을 열고 향후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특별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진은 선포식에서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이 벌인 퍼포먼스 모습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형제도 폐지에 따른 불합리함과 불안감 등에 대한 우려를 여전히 내놓고 있다. 다음 글은 소설가 조정래 씨가 일간신문에 기고한 칼럼 일부다. 조 씨는 10억 원을 모으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살해한 다섯 명의 실제 범죄자 사례를 들며 제도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두 가지 자료를 보면서 한쪽의 입장에서 다른 쪽을 비판한다면 어떤 논리를 펴야 할지, 또 그에 반박하는 논리는 어떤 게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민주주의와 함께 인도주의는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최상의 창조물이고 지고한 아름다움입니다. 그 인도주의가 피워내고자 하는 꽃송이 중의 하나가 '사형제 폐지'입니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가 세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20여 년 전부터 저는 작가로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지만,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좀 생각해 봅시다. 앞에서 예로 든 다섯이 대여섯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인 사람이 그뿐일까요. 그들은 그 유가족들까지 '간접살인'했습니다.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죽음으로 어린 자식들의 인생이 망쳐져 버렸다면 그보다 큰 겹살인은 없을 것입니다.

'사형제 폐지'는 그런 사람들까지 살려주자는 것입니다. 그 사건의 범죄자들은 모두 사형당했다고 대들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주의는 모든 사람의 인권과 목숨을 '내 목숨처럼'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죽여서도 안 되는데 닥치는 대로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형제가 있어도 살인이 줄었다는 증거가 없다. 죄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다.' 이것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이 내세우는 이유입니다. 그지없이 인도적이기는 하나 좀 단순하고 무책임합니다.

그럼, 사형제가 없어져도 살인이 늘지 않는다는 보장을 무한책임으로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죄인들이 진심으로 회개한다고 하는데, 그 '진심'의 잣대가 무엇이며, 죽어간 사람들의 억울한 인권은 누가 책임지는 것입니까. 또한 유가족들의 통한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사형제도의 악용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적 제거용이나 통치수단의 하나로 쓰는 경우입니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형제도의 정치적 악용은 끝없이 자행되어 왔습니다. 저도 사형제 폐지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신중하게 경우를 구분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와 슬기는 그 두 경우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법은 구속인 동시에 우리의 공동체를 엮어가는 울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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