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함께 온 다채로운 멜로 영화

입력 2007-10-10 07:41:00

가을은 멜로 영화와 함께 온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멜로 영화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을 알리는 멜로 영화의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곽경택 감독의 '사랑'. 한 남자와 여자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은 지난 3일 개봉해 17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는 식의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간 것.

그 뒤를 잇는 것은 황정민, 임수정 주연의 '행복'이다. '행복'은 황정민, 임수정 주연으로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다 간경변에 걸린 남자가 시골의 한 요양원에 들어가 중증폐농양을 앓고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건강을 회복하자 여자를 떠나는 내용을 담은 멜로 영화다.

'행복'은 지난주까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사랑'에 이어 멜로 영화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3일 개봉해 지난 주말동안 61만 명의 관객이 '행복'을 감상했다.

'행복' 이후에도 제인 오스틴의 실제 로맨스를 상상해보는 '비커밍 제인', 치명적인 사랑을 다룬 '어사일럼' 등 사랑을 다채롭게 해석한 영화들이 관객몰이를 준비 중이다.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행복'

멜로술사 허진호 감독의 신작 '행복'이 추석 연휴가 끝난 비수기 극장가에 흥행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묻던 감독은 이번에는 '사랑은 변하더라'고 현실적인 대답을 들고 돌아왔다.

방탕한 서울 남자 영수(황정민)는 간경변이 악화되고 경영하던 클럽까지 도산하자 시골 요양소'희망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적응이 느린 영수에게 다가서는 사람은 요양소에서 8년을 기거한 폐농양 환자 은희(임수정). 평생 죽음을 벗삼아 살아온 그녀는 강인하다. 용기를 내 사랑에 빠진 영수와 은희는 요양소를 나와 빈집을 보금자리로 삼고, 서로를 간호하며 행복해진다. 그러나 먼저 병에서 회복한 영수는 슬슬 바깥 세계가 궁금하다. 어느 날 옛 애인 수연(공효진)이 찾아오고 친구는 다시 영수를 불러들인다. 여기에서 영수는 은희를 버리고 도시의 옛 생활을 택하면서 갈등을 겪는다.

◆ 소설가의 사랑은 어떠했을까-'비커밍 제인'

영화 '비커밍 제인'은 영국 로맨스 소설의 대모 제인 오스틴의 삶을 영화화했다.

18세기 말,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가난한 성직자의 딸이다. 조건 좋은 남편을 얻는 것이 여성의 최대 행복이라 여겨지던 시절이지만 제인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진취적인 인물. 귀족 집안의 위즐리(로렌스 폭스)가 프러포즈를 하지만, 제인은 이미 런던에서 잠시 친척집에 기거하러 온 아일랜드 출신의 법학도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에 대한 사랑이 이미 자리잡았다. 그러나 위즐리와의 결혼만이 가난한 제인의 가정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격렬한 사랑에 빠진 톰과 제인은 각자 가정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영화는 아름다운 수채화 화풍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제인 오스틴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실제로 애인이 없었다면 그렇게 피부를 파고드는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라는 상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사실 제인 오스틴의 사랑에 대해 남아 있는 기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1795년 크리스마스에 만나 1798년까지 지속된 제인 오스틴과 실제 연인 사이였던 톰 리프로이의 관계에 대해선 아주 간단한 기록만 남아 있다. 제인 오스틴의 언니가 둘의 편지를 대부분 태워버린 탓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로맨스 소설의 대모의 실제 로맨스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 치명적인 사랑-어사일럼

사랑이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기에 사랑은 더욱 달콤하게 느껴진다.

'치명적 사랑'에 관한 영화로는 이번 주 개봉하는 '어사일럼'이 있다.

패트릭 맥그래스가 1990년 출간한 소설 '어사일럼'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을 생생히 들여다보며 섬뜩함마저 느끼게 하는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스텔라(나타샤 리처드슨)는 한 정신병원의 부원장이 된 남편을 따라 아들 찰리와 함께 정신병원 사택에 들어온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스텔라의 욕구는 시어머니에게 늘 부적절한 행실로 지탄받으며 남편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그러던 중 정원에 일하러 온 환자 에드가를 만나며 스텔라의 성적 욕망과 이성에 대한 은밀한 감정이 솟구쳐오른다. 에드가는 바람난 아내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후 중증 인격장애로 6년째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는 조각가. 피터 박사는 스텔라에게 '빗나간 천재 조각가' 에드가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스텔라와 에드가는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정사에 빠져들고 마침내 스텔라는 진심으로 에드가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에드가는 병원에서 도망쳐나와 스텔라를 다시 만나고 스텔라에게 가정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사랑에 빠진 스텔라는 아들마저 버리고 에드가와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에드가의 질투심은 스텔라를 점점 옥죈다.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카메라와 드라마 전개는 스릴러의 묘미를 느끼게 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영국 최고의 배우들이 등장해 1950년대 신분과 계급, 성적 차별이 여전히 지배하는 영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함께 제공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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