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 교수가 권하는 '영어 학습법'

입력 2007-10-09 07:00:52

'벙어리 영어' 탈출 왕도는 First off '동기부여'

▲ 경북대 영어교육과 핀치 교수가 아내인 박희본 강사와 함께 올바른 영어 학습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잘하려면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 경북대 영어교육과 핀치 교수가 아내인 박희본 강사와 함께 올바른 영어 학습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잘하려면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이제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 영어 격차, 영어 실력에 따라 신분과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의미)라는 용어도 흔한 말이 됐다. 영어가 한 개인의 지위와 장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0년 넘게 영어를 배우면서도 '벙어리 영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그럴까. 경북대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로 6년째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앤드류 핀치(Andrew Edward Finch·57)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영국인인 핀치 교수는 2001년 영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부인(박희본 경북대 영어영문과 강사)과 결혼했다. 바둑과 청국장을 좋아하고 2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가 얘기하는 한국 학생들의 잘못된 영어 학습법과 그 대안을 들어봤다.

▶투자에 비해 실력이 낮은 이유

"한국 학생들의 영어에 대한 노력과 투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대학 신입생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니 말하기 실력이 너무 기대 이하여서 의아했지요." 핀치 교수의 이런 궁금증은 몇몇 중·고교의 영어 수업을 참관한 후에야 풀렸다. 수업 시간 내내 교사 혼자 문법을 설명하고 독해하는 방식은 실제 영어 구사력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는 것. 쓰기와 말하기도 너무 소홀했다. 문법, 독해 등 기능만 측정하는 수능 영어 시험 탓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영어를 능동적으로 표현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말하기, 쓰기처럼 고차원적인 사고(High order thinking)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바둑을 잘 두기 위해 많은 돌을 놓아보면서 여러 수를 생각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영어 공부에는 동기부여가 중요한데 시험이 동기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는 영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야 이후의 영어 학습이 자기주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찾는 일이다. "만일 내 꿈이 의사이고 더 실력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해외 유학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면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찾은 셈입니다. 이런 동기부여가 어린 나이 때부터 필요합니다. 이게 없다면 영어 공부는 수능이 끝나고 나면 그만이지요."

한국 학부모들의 영어 조급증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근시안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이 고교생 수준의 문법이나 단어를 달달 외우는 것은 성취감보다는 스트레스를 키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특정인의 '영어 학습 성공기'도 자칫 영어학습의 왜곡을 가져올 수도 있다. 언어 학습의 기술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 이면에 숨어있는 학습자의 태도 등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핀치 교수는 "만능 학습자들이 사용한 전략 리스트만 단순히 따라 한다고 해서 훌륭한 영어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며 "그들의 성공은 동기부여, 자신감, 호기심, 배움에 대한 열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열의를 갖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안은 뭘까

그렇다면 영어 공부의 정공법은 뭘까. 핀치 교수는 독서를 강조했다. "한국 학생들의 영어 스피킹 실력이 뒤처지는 이유는 생각을 영어로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선 독서가 최선이지요."

그는 어린이의 경우 수준에 맞는 영어 동화책을 골라 꾸준히 읽거나 영어 CD, 테이프를 청취할 것을 추천했다. 중·고교생은 영자 신문, 쉬운 원서 등을 많이 읽어보기를 권했다. 그래야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이 되고 말하기도 수월해진다는 것. "자신의 단어 수준에 맞춰 다양한 주제의 글을 읽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서를 통해 비판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 추론, 요약능력 등을 키우는 것은 영어를 배우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

영어를 익히는데 있어서는 액티비티(Activity)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영어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재미와 학습효과를 함께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이 의문문을 처음 배운다면'Do you like 차이니즈 푸드?', 'Do you like 팝송?', 'Do you like 컴퓨터 게임?' 등으로 같은 문장을 반복해 봅시다. 말이 먼저 입에 붙고 나면 그때부터 문법을 배워도 늦지 않습니다." 영어로 친구에게 동작을 지시하거나 퀴즈를 함께 풀어보는 등의 놀이도 흥미를 키워주는 좋은 방법.

한 가지 주제의 글을 읽고 여럿이서 영어로 토론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앞으로의 영어환경은 단순한 생활 회화 수준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대학생들은 영어 채점관 앞에서 10분간 주어진 문제지를 읽고 토론하는 시험을 칩니다. 토론 준비를 위해서는 글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 심층적인 영어 공부가 됩니다." 영어로 간단한 메모를 하거나 일기 쓰기, 외국인 친구와 인터넷 펜팔(e-pal)하기 등도 추천했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된 원어민 교사 자질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인들이 너무 외국인 교사만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한국 학생들을 잘 이해하는 것은 한국인 교사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연수가 영어 공교육의 질을 높일 것입니다."

핀치 교수는 "한국도 조만간 이중 언어 교육이 대세가 될 것"이라며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 아이들은 영어가 유창해지면서 동시에 한국어 능력도 향상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핀치 교수가 권하는 영어공부법

1. 영어로 쓰인 책이나 글을 많이 읽자. 독서는 사고의 폭과 생각의 소재를 넓혀준다. 어린이의 경우 공공도서관 등에서 안내하는 권장 도서 목록이나 원어민이 책을 읽어주는 CD가 담긴 책을 권할 만하다.

2. 평상시에도 생각을 영어로 해 보자. 하루 일과를 영어로 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자신이 되풀이하는 간단한 동작을 한국어로 써놓고 영어로 바꿔보자. 생각보다 쉽지 않다.

3. 영어 동호회나 방과후학교 영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학교 선생님께 영어말하기 클럽이나 영어로 쓰인 책들을 모아둔 도서관이나 코너를 만들어 줄 것을 건의해보자.

4. 영어로 일기를 써보거나 이메일 친구를 만들자. 일기는 영어 표현과 글 전개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반 전체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국가의 학생들과 이메일 친구가 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5. 인터넷을 잘 활용하자. 영어 방송이나 대본 등 시청각 자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잉글리시 챈트나 동요를 따라 불러보거나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를 감정을 실어 따라해보는 것도 좋다.

6. 영어 비디오를 자주 보자. 흥미로운 영어학습의 동반자가 된다. 어린이의 경우 디즈니 영화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단, 되도록 영어 자막이 있는 비디오를 선택해보자.

7.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자. 영어 활용 능력이 자신의 장래에 기여하는 면을 계속 상상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습관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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