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습이네', '엑박이야', '간지나네'…. 도무지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아이들이 쓰고 있다. 기발한 말놀이쯤으로 좋게 봐줘야할까 싶다가도 인터넷상에서 맞춤법이 엉망인 아이들의 글을 마주치면 슬며시 걱정이 든다. 아이들의 말이 가벼운 유행만 좇는 것 같아서다. 언어는 생각의 표현인데 그 속에서는 생각의 깊이를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학교 시험이나 수행평가에서 맞춤법 틀린 답안이 수두룩하다는 교사들의 안타까움이 쏟아질까. 세종대왕이 지금의 이런 모습을 봤더라면 혀를 끌끌 찰 일이다.
만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새로 나온 책 '훈민정음 구출 작전(서지원 글/한솔수북 펴냄)'은 이런 가정 아래에서 우리에게 한글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생각해보게 한다.
서기 2050년 한반도에는 한글이 없다. 나라말이 없어 중국말, 일본말, 영어, 이두를 쓰는 작은 네 나라로 쪼개져 있다. 사용하는 말과 글이 다르다 보니 한 민족이라는 생각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한국이 여전히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처럼 상식을 뒤엎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런 어느날 경복궁에서 한글로 된 고서가 발견되고, 비밀리에 책을 보관하던 언어학자가 일본이 보낸 자객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현장에 급파된 김종서 형사는 처음 보는 고대어(한글)에 당황하지만 천재 국어학자 성삼문 문화부 장관은 책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다. 누구나 쉽게 배우는 우리말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강철 대통령. 때마침 발견된 시간터널을 통해 장영실, 김종서, 성삼문 세 사람을 570년 전 조선시대로 보내 세종대왕이 한글을 완성하도록 도울 것을 명령한다. 세 사람이 만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반대파 때문에 연구를 멈춘 상태. 과연 훈민정음은 완성될 수 있을까.
기발한 상상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정교한지 덧붙여 설명한 책 속 코너도 유익하다. 모음이 탄생한 과정을 보자. '· (점)'은 하늘의 둥근 모양을, 'ㅡ(가로선)'은 땅의 평평한 모양을, 'ㅣ(세로선)'은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든 자음은 또 어떤가. 세종대왕은 대군과 공주들을 불러놓고 밤낮없이 입 속을 들여 봤다고 한다.
말로만 한글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것보다 한글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한 번쯤 상상해 보게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기
1. 한글은 세계 400개가 넘는 문자 가운데 뜻과 만든 사람, 만든 때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다. 외국에서도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이유는 뭘까.
2. 훈민정음 구출작전에서 가상의 현대 한반도에는 한글이 없다. 만일 책의 내용처럼 실제로 한글이 없다면 일상생활에서 어떤 불편함이 생길까 생각해보자.
3. 한글은 자음 열네 개와 모음 열 개만 알면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고 생각을 글로 나타낼 수 있다. 자음과 모음의 생성 과정을 알아보자.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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