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섬진강 뱃길…동양화 같은 백사청송
하동포구 팔십 리! 섬진강 강물이 남해와 합류하는 하구에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화개장터에 이르는 곳까지를 말한다. 남해안 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에서 하동읍에 이르는 19번 국도가 섬진강을 따라 거의 직선 형태로 넓게 열려 바람처럼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하지만 '하동포구 팔십 리'는 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것으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섬진강은 수운의 주요한 뱃길이었다. 화개장터가 유명한 것도 남해에서 황포돛배가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소금, 미역, 새우 조기, 명태 등을 배로 실어왔고, 주능선 넘어 마천 사람들은 등짐으로 산나물, 약초, 곶감, 한지, 벌꿀, 박바가지 등을 메고 왔었다.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도 하동에서 거룻배가 평사리까지 오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강을 따라 흘러가는 강변의 풍치는 한 폭의 동양화와 같다. 남해에서 뱃길을 따라 하구로 오르면 하동 김의 주산지인 갈사도가 있으며, 다시 강물을 거슬러 오르면 남해 고속도로의 섬진교와 두우산을 감상할 수 있고, 포구 위쪽 강둑 옆에 펼쳐진 갈대 숲을 지나면 신방촌의 한가로운 포구에 이른다. 하지만 하동포구 팔십 리도 지금은 지난날과 너무 달라졌다. 꼬불꼬불 산자락을 어지럽게 따라들던 도로가 직선으로 뚫린 반면 강바닥이 거의 메워지는 바람에 황포돛대의 그 뱃길은 이미 끊어져 아쉬움이 있다.
계속 강을 따라 오르면 경전선의 섬진강 철교가 무지개처럼 원을 그리고 있으며, 그 밑으로 백사가 펼쳐져 있고, 백사의 뒤편에는 300년 송림이 숲을 이룬다.(백사청송 하동송림) 조선조 영조 21년(1745년)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방풍과 방사를 목적으로 식재했던 것이 지금은 노송숲을 이뤄 섬진청류와 더불어 시정이 아름답게 넘치는 명소가 되었다. 2만 6천㎡에 노송 1천여 그루가 어우러져 있고, 또한 숲속에 궁도장인 하상정이 자리잡고 있다. 돌아서면 오룡정 옛터의 언덕위엔 섬호정이 나타나고, 섬호정 부근의 해량동 부두엔 그 옛날 화려했던 번영의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하지만 섬진강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 우왕 11년(1385년) 왜구가 쳐들어왔지만, 사람들이 맞서지 않아 두꺼비들이 대신 들고 있어났다고 하여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蟾賑)강이라 이름한다지 않는가! 하동포구 팔십 리 길은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일찍부터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또한 두 번의 왜구의 침입에 따른 엄청난 희생, 정유재란때 구례사람들의 처절한 옥쇄, 동학농민전쟁과 빨치산과 군경토벌대의 격전지 등으로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아픔의 지역이다.
여러 구비 거슬러 오르면 하동포구 팔십리의 끝자락 화개 계곡이 나타나고, 유명한 화개장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현재 물건을 사고파는 곳보다 관광지로서의 역할이 높으며, 천년고찰 쌍계사까지 가는 길은 봄이 되면 환상적인 벚꽃길이 만들어져 꽃길 옆의 개울에서 노니는 은어떼의 한가로움과 어우러져 봄빛의 절정을 맛 볼 수 있다.
"하동포구 팔십 리의 굽도리배야, 하동포구 팔십 리에 봄을 실어라."는 우리 가요가 있다. 하동포구의 아름다움은 어디 봄만이랴. 사시사철 어느 때 찾아와도 그 아름다움은 넘쳐난다.
◆하동포구 팔십리에 대한 Q&A
▷ 섬진강 유역에 발달된 주요한 생활 터전은?
섬진강은 상류에서부터 하류에 이르기까지 평야를 이루지 않고 남원, 순창, 구례, 하동 등 아담한 분지만을 이루면서 흘러간다. 이와 같은 곳은 편마암복합체인 지리산 일대에 국지적으로 화강암이 관입하거나 지각운동 당시 편마암이 화강암화 작용을 거쳐 심층풍화가 진행된 곳이 대부분이다. 다른 암석에 비해 연약한 화강암의 차별침식으로 형성된 침식분지는 내륙의 주요 쌀 생산지이며, 내륙 지방의 중심 도시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과거부터 주요 생활 터전이었다. 섬진강 중상류 지역에 발달한 침식분지는 남원, 임실, 구례, 곡성 등이 해당된다.
▷섬진강의 수운은 어떻게 발달하였는가?
우리나라 하천은 내륙 수운 발달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유량의 계절차가 크고 겨울철 결빙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지가 많은 지형 특성 때문에 과거 세미의 운송은 대부분 하천을 이용하였다. 총 길이 120km로 비교적 짧은 하천인 섬진강은 일정 수심이 유지되는 하구 부근을 중심으로 수운이 발달하였으나, 근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은 흔적만 남아 있다.
◆ 주변에 이런 곳도 있어요.
▷ 화개 장터
영호남의 접경에 위치하여 남해안의 수산물과 소금, 비옥한 평야의 곡물, 지리산의 산채와 목기류가 모이는 곳이었다. 하동포구의 발달된 수로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며 조선 중엽부터 해방 전까지 번성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전국 5대시장)이 되었으나, 교통과 유통구조의 발달로 쇠퇴하여 옛 모습을 잃었다.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유명해진 이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옛 정취를 전하기 위해 2001년 복원되어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남도대교도 볼거리다.
▷ 녹차 시배지 및 차문화 센터
1천 30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차가 들어왔다고 한다. 흥덕왕 3년(828년)에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녹차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인 이곳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하동읍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화개 삼거리를 거쳐 10리 벚꽃길을 지나면 쌍계사 근처 마을인 석문마을과 신촌마을 사이에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쌍계사 부근의 차문화센터와 녹차 체험관은 하동야생차의 우수성, 재배방법 등을 소개하는 전시실과 다도를 배우는 다실로 구성되어 차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 쌍계사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한 삼신산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세워진 절로 처음에는 옥천사라고 했다가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차 종자를 사찰 주변에 심고 건물을 보수, 사찰의 규모가 커지면서 쌍계사라 불리게 되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약 6km구간 '화개10리 벚꽃길'은 혼례길목으로 젊은 남녀가 같이 걸으면 백년해로를 기약한다는 곳이다. 쌍계교를 지나면 쌍계사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쌍계와 석문'이란 글씨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글씨이며, 화개골을 중심으로 신선이 되고자 했던 고운 선생의 족적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 평사리 최참판 댁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다. 조선후기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 등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며, 또한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을 캐릭터로 개발하여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김상훈(영남삶터탐구연구회, 청구중학교 교사)
참고자료 : 삶터탐구활동 길잡이(대구남부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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