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묻은 발·훔치는 발·튼튼한 발…발 속에 너 있다
'발을 보면 인생이 보인다.'
개개인마다 살아 온 인생이 다르듯 발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하긴 발은 그 사람의 인생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농부의 발과 발레리나의 발은 전혀 딴판이다. 평생을 다른 일을 해온 사람들인데 발 모양이 같을 리가 없다. 한평생 밭일을 하며 살아온 농부의 발과 프로야구 대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야구선수의 발, 튼튼함이 필수인 백화점 안내 도우미의 발을 통해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농사와 운동, 건강한 발의 비결"
70평생 농사만 지어온 구자명(71·대구시 동구 신용동) 씨의 발은 여느 사람의 그것과 다른 점이 없어보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용진마을에서 복숭아와 사과 등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한다. 고된 농사일만 50년 이상 해온 그의 발을 살폈다. 250㎜의 아담한 크기에 굳은살도 적당하다. 발바닥 혈색도 좋은 편이다. 겉보기에도 한눈에 건강해보이는 발이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왔지. 땅을 물려받아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껏 배고픈 것 모르고 살았어."
고등학생(중앙상고) 때는 경북도 육상 대표선수로 뽑혀 지역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을 정도로 발빠르기로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그는 도시로 나가는 대신 농사를 짓기로 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평생을 살아왔고 지금도 자식들 먹을 만큼의 사과와 복숭아농사만 짓는다. 그게 건강의 비결이란다.
오전에 밭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오후에는 친구들과 만나 팔공산으로 등산을 간다.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만 있어서는 건강할 수가 없어. 조금씩 운동의 강도를 높이면서 운동을 해줘야 노인들도 오래 살 수 있어." 그의 발은 별 특징이 없어보였다. 50년 동안 논밭에서 잔뼈가 굵은 발인데도 평범했다. 굳은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훔치는 발이지만 자랑스러워요"
야구화 끈을 풀었다. 양말까지 벗자 맨발이 드러났다. 의외로(?) 깨끗하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엄지발가락에 생긴 굳은살을 잘라냈단다. 삼성라이온즈 강명구(27) 선수는 대주자전문요원이다. 빠른 발이 주무기다. 50m를 5.5초 내외에 뛴다. 조동찬과 함께 삼성 선수들 중 가장 빠르다. 보통 사람과 다름없어 보이는 발이지만 발은 그를 지탱시켜주는 힘이다. 엄지발가락의 굳은살도 많은 연습 끝에 얻은 훈장. 본격적인 훈련 전 몸을 풀기 위해 달릴 때도 전력 질주하고 다른 선수들이 배팅 연습을 할 때 주루 플레이도 함께 연습하기 때문이다. "달릴 때 굳은살이 이리저리 밀려 아프기 때문에 한 번씩 잘라줘야 합니다. 발톱을 깎을 때도 발을 다칠까봐 일부러 조금씩 남겨두고 깎죠."
발만 빠르다고 도루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강명구는 더그아웃에서 상대 투수들의 투구 습관(일명 쿠세)을 눈여겨본다. 투구 동작, 견제 동작 등을 살펴둬야 도루도 보다 수월해진다. 그래도 그에게 도루는 쉽지 않다. 주로 승부처에서 투입되는 터라 주루 플레이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상대는 강명구가 십중팔구 도루를 시도한다는 생각에 대비를 하기에 더욱 어렵다.
2003년 프로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강명구는 안타보다 도루수가 훨씬 많다. 2006년까지 43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올 시즌에는 지난 주말까지 13번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안타 수는 2006년까지 15개, 올 시즌엔 3개뿐이다.
"아직 제 실력이 모자란 탓이죠. 아쉽긴 하지만 현재로선 제가 대주자로 나서는 것이 팀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주자로만 선수 생활을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튼튼한 발만큼 만족도도 높아요"
7년째 백화점 입구에서 상냥한 미소로 고객을 맞이하는 안내 도우미. 하루종일 많게는 8시간 이상을 서서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늘 그녀의 미소만을 생각한다. 다리와 발은 한 번도 내려다본 적이 없다.
동아쇼핑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나윤미(29) 씨를 만났다. 스물두 살 때부터 백화점 도우미 일을 했다. 햇수로는 8년차다. 발도 이력이 붙었다. 스타킹 속의 그녀의 발을 만났다. 169cm의 커다란 키와 서구적인 외모에 걸맞게 그녀의 발도 닮았다. 245㎜로 키에 비해서는 큰 편은 아니었지만 양볼이 넓고 두툼했다. "오랫동안 서서 일하다 보면 발바닥에 굳은살이 많이 배게 돼요." 그러나 그녀의 발은 어릴 적부터 튼튼한 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튼튼한 발에 꼭 맞는 일을 찾은 셈이다.
대학(계명문화대)을 졸업하고 곧바로 구한 직장이 백화점이었다. "처음엔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서 시작했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안내 도우미 일만 해왔어요." 발이 튼튼하다고 도우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모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인상이 좋아야 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미소를 짓는 것이 안내 도우미의 첫 번째 미덕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들이대는' 총각들을 가볍게 물리치는 것도 이젠 선수급이다.
동아쇼핑만 해도 12명이나 되던 안내 도우미들이 지금은 단 2명으로 단출해진 만큼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그녀는 그러나 "어쩌겠어요.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일에 비해서 만족도가 높기도 하거든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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