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로렌조 오일병 아들 간호 임미숙씨

입력 2007-10-03 08:45:19

기적같은 웃음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 열한살의 나이지만 사지가 마비되는 로렌조 오일병을 앓고 있는 기현이는 3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어머니인 임미숙 씨는
▲ 열한살의 나이지만 사지가 마비되는 로렌조 오일병을 앓고 있는 기현이는 3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어머니인 임미숙 씨는 '약도 없다'는 이 병마와 싸우는 기현이가 힘겹게 미소를 띠는 것만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 북구의 한 임대아파트 꼭대기층. 반듯이 누워 있는 기현(가명·11)이에게 엄마는 조심스럽게 약을 먹이고 있었다. 제 힘으로 혀를 놀릴 수조차 없는 기현이의 입가로 약이 흘러내리자 엄마는 숟가락을 쉴 새 없이 놀리며 다시 입 속으로 약을 넣었다. 이렇게 하루 일곱 차례씩 약과 전쟁을 치르는 기현이는 이제 열한 살이다. 한창 뛰어놀 나이지만 사지가 마비된 기현이는 이렇게 벌써 3번째 가을을 맞고 있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영화로 인해 '로렌조 오일병'으로 더 알려진 희귀난치병이다. 성염색체인 X염색체가 유전자 이상으로 몸 안의 '긴사슬 지방산(VLCFA:very long chain fatty acid)'을 분해하지 못해 이 지방산이 뇌 속으로 들어가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첫 증세가 나타난 지 6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고 2년 안에 식물인간이 된 뒤에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현이는 벌써 3년째 저 무서운 병과 싸움을 벌이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이젠 아이가 저를 살려내고 있지요."

2004년 9월 중순이었다. 기현이는 운동회 연습을 끝내고 왼쪽 발을 끌면서 집으로 들어왔고 쓰러졌다. 팔에 금이 갔고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무서웠어요. 병을 알게된 뒤 왼쪽 발이 마비되더니 오른쪽 다리, 팔, 목, 입까지 마비되는 데 3개월도 채 걸리지 않더군요. 좋은 약이란 약은 다 써봤고 이곳 저곳에서 주워 들은 몸에 좋다는 치료는 다 받아봤지요. 겨울에 아이를 담요에 똘똘 싸서는 그 먼 곳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닌 것을 생각하면…."

엄마 임미숙(가명·45) 씨는 지루했던 지난 세월을 힘겹게 끄집어 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식당을 팔아 병원비를 댔고, 사글셋방으로 옮겼다가 지난달에 임대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했다. 남편은 화물차를 팔았다. 이제는 몇 십만 원도 안 되는 배달일을 하며 약값을 마련한다. 수천만 원의 빚,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아 등록, 끝없는 투병. 가족의 삶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이 병에는 약이 없답니다. 그러나 어느 책에선가 '병이 있으면 약도 있다'는 글을 읽고 희망을 갖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목도 못 가누던 아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로렌조 오일을 수입해서 먹였다. 몸에 좋다는 한약에다 가시오가피를 구해 먹였다. 매주 경남까지 내려가 기치료를 받았다. 몸에 좋다는 물을 샀다. 수지침을 배웠고 나쁜 피를 뽑는 연습도 했고 물리치료법을 배웠다. 60만 원짜리 약을 600만 원에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약은 의료혜택이 안 됐다. 그렇게 약값으로만 한 해 1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지난해 아이 머리를 깎이려고 미용실에 들어가다 문턱에 걸려 넘어졌지요. 품에 들고 있는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다 양쪽 발목이 모두 부러졌어요. 아이가 아픈데 저까지 그 지경이 되니 남편이 이리저리 뛰면서 돈을 벌고 저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몇 개월간 애 뒷 바라지를 하고… 그래도 아이가 괜찮다는 마음에 힘든 줄도 몰랐는데…."

마비된 채 주먹만 쥐고 있던 기현이의 손가락이 펴진 것이 올해 초다. 엄마의 말귀를 알아 듣고 웃음을 보여주는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재밌는 구구단을 불러주면 세상을 다 가진 웃음을 지어 보여준다. '칠칠이 뺑끼칠, 팔팔이 돌팔매….' 이 웃음은 기현이 부모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으로 돌아온다.

"몸에 좋다는 약초 뿌리가 어디 있다는데 아무리 수소문해도 통 연락이 없네요. 이 아이의 기적 같은 웃음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조금의 돈이라도 모을 수 있다면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음껏 숨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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