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터치)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 복무 검토

입력 2007-10-02 07:33:13

정부가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수용, 대체복무 허용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병역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군복무 이외의 방법으로 병역을 대신하도록 하되 형평성을 고려해 근무 강도가 높은 곳을 지정하고, 기간도 훨씬 길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남 소록도의 한센병원, 경남 마산의 결핵병원, 서울 등의 정신병원 등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방침이 발표되자 논란은 금세 거세게 일었다. 신정아 사건 등에 밀려 잠시 뜨거웠다가 식은듯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여러 차례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대체복무제와 관련해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개인의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것인가, 국가안보라는 가치를 내세워 이를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원초적인 찬반 논란이 있다. 이번 정부 발표와 연결시킨다면 갑작스레 추진하는 시기적 문제, 병역 기피의 수단이 될 가능성 등이 시빗거리가 된다.

▨ 양심의 자유 vs 국가 안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은 여론의 지지만 약할 뿐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와 법적 보완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을 내세운다. '우리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국내의 범위를 넘어 국제적 문제로 부각되어 있는 상태다.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우리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 처벌이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규약에 어긋난다며 정부에 개선을 권고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 복무제 입법화를 권고한 바 있다.'(신문 사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해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까지 보탠다. '지난 5년간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매년 700∼800명대에 이르는데, 이들은 어차피 형사처벌을 받을지언정 입대는 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을 복역시키고 전과자로 만들어 장래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당사자나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신문 사설)

그러나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 계속돼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를 채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보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 당연히 우세하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다. 장병들은 총성과 포성이 언제 울릴지 모르는 상황 속에 있다. 병역의무에는 목숨이 담보돼 있다. 상황이 다른 나라와 병역제도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신문 사설)

단지 몇몇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국방의 의무와 국가 안보에 대한 국민 의식의 통합을 깨뜨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통합을 이뤄내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구성원들의 분열을 막는 것이고, 국민개병제 하의 예외없는 병역의무 이행은 거기에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 된다. 더구나 국민이 온갖 기준에 의해 갈라질대로 갈라진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병역의무마저 종교(파)나 신념에 의해 차별이 두어진다면 사회 통합 유지에 치명적이다.'(신문 칼럼)

▨ 시기적 문제

정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시기상조라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이번 발표가 공론화 기회를 외면한 채 특정 세력의 부추김 혹은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다. '국방부가 공론화 기회를 스스로 내던진 뒤 갑자기 대체복무 허용 방침을 밝히니 정부 내 좌파그룹의 압박에 국방부가 굴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병역 기피행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엄존하고 국민개병제의 근간을 훼손할 위험성이 없지 않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몇 달 만의 급선회는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이지 않은가.'(신문 사설)

이 때문에 병역 거부에 대한 문제는 국민적 토론의 장에 올려 국민의 의사를 수렴한 뒤 결정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까지 시행한다고 일정을 못 박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제도든 한 번 시행되면 되돌리기는커녕 보완조차 힘든 실정을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갖는다.

'대체복무제가 시행에 들어가면 얼마 가지 않아서 제도의 문제점이 속출할 것이다. 현역에 비해 너무 긴 복무 기간 등을 들어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인권 침해라는 여론 몰이가 시작될 수도 있다. 입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특정 종교에 사이비 신자들이 들끓을 수도 있다. 한 번 풀리면 되돌리기 어렵다.'(매일신문 사설)

▨ 제도 악용 가능성

지금은 특정 종교 신도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또 다른 병역 기피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당연해 보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제 허용이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제도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완벽히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에 조그만 허점이라도 있으면 이 제도는 공론(空論)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신문 사설)

제도를 철저하게 다듬은 뒤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먼저 대상 선정이 쉽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어떤 이들을 종교적 병역 거부자로 볼 것이냐를 판단할 때도 심각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들로 위원회를 만들어 엄정하게 자격을 판정하겠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형평성과 공정성에 관한 시비는 피할 수 없다.'(신문 사설)

아무리 힘든 곳에 복무시킨다고 해도 관리가 되지 않으면 제도 취지가 무색해질 뿐만 아니라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생긴다. '이 제도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엄격한 사전·사후 관리가 중요하다. 지난여름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병역특례가 사회문제화되자 정부는 인력 부족 타령만 했다.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신문 사설)

그러나 군 복무보다 훨씬 더 긴 복무기간, 강한 노동 강도를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 해도, 병역 대신에 군 복무기간보다 1.5배 더 긴 기간에 중환자들을 돌보거나 양로원에서 오물들을 치우겠다고 나설 젊은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을 비롯한 거의 모든 괜찮은 직장에서는 군에서 윗사람에 대한 복종의 '남자다운' 습관을 체득하지 않은 이들을 반기지 않을 줄을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신문 칼럼)

대체복무를 위해 억지 병역 거부를 하지 않도록 현재의 군대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따갑다. '현역복무의 위험성과 공포감을 줄이는 게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이다. 젊은이들이 대체복무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힘들어지면 대체복무제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는 악순환의 출발점이 된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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