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의 교육프리즘)중간고사를 앞두고

입력 2007-10-02 07:55:02

고1 학생이 상담하러 왔다. 아버지의 훈계 방식이 너무도 마음에 안 들어 중간고사 공부를 포기하고 집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사십대 후반의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배고프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물질적으로 아쉬운 것이 없는 환경에서 공부만 하라는데 왜 그걸 못하느냐고 늘 다그친다고 했다. 그 밖에 또 무엇이 힘드는지를 물었다. 걸핏하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버지의 친구 아들을 본받으라고 한다고 했다.

부모 세대가 어린 시절에는 가난 자체가 동기유발의 원천이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이 우리의 삶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유인하였다. 그러나 가난을 직접 체험하는 것과 이야기나 책으로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더 이상 배고프지 않고, 더 이상 헐벗지 않은 아이들에게 부모가 겪은 가난을 반복적으로 들려준다고 동기가 유발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세대는 그들의 부모님이 불어넣어 준 다소 순수하지 못한 경쟁심도 좋은 동기유발이 될 수 있었다. 같은 동네, 혹은 인근의 부자 아이와 경쟁의식을 심어주고, 심지어 경쟁자를 시기하고 질투하게 하는 것도 성취 동인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동급생과의 비정상적인 경쟁심은 학교생활을 각박하게 만들고 마음의 여유를 빼앗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으뜸가는 것이 시험이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을 목전에 둔 사람은 그것을 비켜가고 싶어한다. 우리가 특히 두려워하는 것은 입학시험처럼 응시자 일부를 탈락시키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보다는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고 확인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보기도 한다. 읽은 책의 내용과 소감을 정리한 편지를 친구에게 보내는 것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학교시험은 정리와 경쟁이라는 두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 시험을 통해 학습한 내용을 정리함과 동시에 구성원 상호 간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한다. 결과보다는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정리에 중점을 두면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덜 느끼고, 보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자녀를 분발하게 하고 싶다면 다그치고 꾸중해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시험이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며, 피할 수 없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점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납득할 수 없는 훈계로 아이를 자극하는 것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관계만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교육문화센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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