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다)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입력 2007-09-29 07:59:17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김갑수 지음/웅진닷컴 펴냄

'고독한 삶을 음악으로 탐닉한다.'고 떠들던 이십대 후반 대구 동산동, 선배의 꼬질꼬질한 화실에서 나는 '바흐'를 만나면서 150센티미터를 겨우 자란 '슈베르트'의 키에 관심이 갔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거처에서 20년 이상 가난과 냉소를 흘렸다는 '에릭사티'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고전음악에 가슴을 내주었노라고 어느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사티에 대한 글.

"한밤에 듣다 보면 스르르 잠에 빠지는 일이 흔하다. 이럴 때 잠은 달콤하고 깨어나 만나는 사티는 심란하다. 사티가 남겼다는 기록이다. "나는 완전히 혼자다. 고아처럼 혹은 고독한 벌레처럼." 파리멋쟁이의 기교적 실험으로 알았던 그의 음악에서 가난과 고독의 목소리를 읽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참을 수 없는 인생의 무게.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린 자의 별 볼일 없음. 별 볼일 없음에 대한 애틋한 동병상련. 나는 가끔 음악 듣기가 지겹다."

이 책의 저자는 시인이자 출판 평론가다. 또한 음악에 집요하게 매달려온 마니아이기도 하다. 사랑에 다치기도 하고 흠집나기도 한 자신의 삶 얘기와 음악가들에 대한 오롯한 각혈이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는, 말하자면 음악 에세이다. 저자를 만족시켰던 까닭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뒤 풀어 놓은 글은 예술성과 상투적 사랑의 대중성을 고상하게 보여 준다. 예컨대 이렇다. 또다시 에릭사티에 대한 구절이다.

'처음엔 멋 부리는 요설가로 소홀히 여겼다가 로트렉을 방불케 하는 그 처연한 개인사를 알고 나서 평생지기처럼 자리 잡은 인물이 프랑스의 에릭사티다. 그는 평생 궁핍과 무명의 고독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 이 처절한 독백은…'

표지사진은 한없이 달콤한 잠의 쾌감 같은 음악 듣는 방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환상을 좇는 쇳덩어리(오디오)가 있다. 물론 관심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말이다. 매일 밤 그는 그곳에서 수도승처럼 틀어박혀 CD며 LP를 탐닉하며 무위의 시간 도둑질을 한다.

저자는 "음악만 듣고 살면 안돼?" 라고 반문한다. "저녁 약속 좀 안 하고, TV나 신문 안 보고 좀 모나게 살면 어떠냐? 우리 사회는 너무 무난한 사람 투성이인 것 아닌가?"

권기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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