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이란 말은 남학생들에게는 종종 가슴 설렘으로, 졸업 뒤에는 추억의 그리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정겨운 단어다. 1979년 봄에 내가 의과대학의 예과과정인 의예과에 입학하니 140명 가운데 14명이, 그러니까 10명 중 1명이 여학생이었다. 그때 선배들은 우리에게 "요즘 의대에 여학생이 늘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보다 의과대학 28년 선배이신 선친께서 학교에 다니실 때는 여학생이 단 두 명이었다고 한다.
대구 중구 동인동 경북대 의대 본관의 붉은 벽돌은 그대로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여학생 수는 점점 늘어나 올해 1학년은 110명 중 남녀 각각 52, 58명으로 이미 여학생 수가 남학생을 앞질러 있다. 의대 추세가 이러니 병원도 사정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20년 전인 1987년, 내가 2년차 레지던트로 몸담고 있던 외과에 인턴 여의사가 지원한 일이 있었다. 외과로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인데다 전혀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결국은 지원자를 끈질기게 설득해 다른 과로 지원을 돌리게 했다.
그러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결국 외과에 여의사가 입성했고 심지어 작년의 경우는 21명 외과 레지던트 가운데 9명이 여의사였으니(올해는 22명 가운데 6명) 거의 반을 차지한 셈이다. 지난해, 외과 회식자리에서 어느 교수께서 최근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를 소개하려고 "여의사들도 있는 자리에서는 좀 무엇한 이야기지만…."이라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곧바로 4년차 여의사가 "교수님! 여기엔 외과 의사들만 있습니다."라고 지적해 그 교수께서는 크게 웃으며 기분 좋게 '잘못'을 사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씩씩한 여의사들인지라 자존심들도 보통이 아니라서 늘어나는 여의사들의 수에 비해선 크게 불편한 병원시스템에 대한 세세한 불평도 별로 하지 않는다. 일전에 무허가로 산부인과 외래 근처에 있던 외과 여의사 당직실이 외래진료동 재배치 공사로 헐리게 됐지만 당사자들은 조선시대 사대부댁 규수들 마냥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의국장의 보고로 우연히 알게 되어, 궁리 끝에 여의사를 부인으로 둔 약점(?)을 가진 다른 과의 선배 교수들께 읍소를 해서 다행히 새로운 당직실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도 화장실, 당직실, 샤워실, 탈의실 등을 포함한 제반 병원의 시설과 시스템들이 여의사들의 늘어난 수에는 못 맞추고 있으나 오히려 당사자들은 큰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앓는 소리, 잔소리를 하기 싫은 그들의 자존심인지, 아니면 힘들게 늘여 놓은 수를 다시 제한받을까 우려하는 마이너리티(소수집단)의 방어본능인지는 알 수가 없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는 '의사(동업자)를 형제와 같이 생각하겠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우리 '누이들'의 불편과 아픔을 먼저 나서서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은 실질적이고도 은밀한 이유가 따로 또 있다. 지금의 추세로 보면 언제 마이너리티로 돌아설지 모르는 우리 남자 의사들을 누이들이 그때 따뜻이 돌봐 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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