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조선 영선사 파견

입력 2007-09-26 07:28:43

조선은 조선말기인 1881년 청나라에 무기제조법 등 선진 문물을 견학하고 미국과의 수교문제를 조율하기 위한 사절단인 領選使(영선사)를 파견했다. 김윤식이 이끄는 영선사는 중국의 선진 군사기술을 배우고 미국과의 조약체결을 위한 사전교섭의 임무를 띠고 9월 26일에 출발하여 11월 17일 북경에 도착했다.

파견된 유학생은 학도와 공장으로 구분되었으며, 학생수는 청나라와 합의된 대로 38명을 선발했다. 그 밖의 관원과 수종을 합하여 총 69명이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화약 및 탄약의 제조법·전기·화학·제도·제련·기초기계학 및 외국어를 학습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5월까지 유학생의 절반이 신병·유고 등의 이유로 중도에 귀국하고, 경비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교육을 중단하고 1882년 11월 귀국하였다.

영선사는 비록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영향으로 1883년 최초로 機器廠(기기창)을 설립하였고, 1882년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영선사는 조선의 개국 이후 근대화과정에서 선진 문물도입과 국제 외교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을 통해 이루어진 중대한 외교활동이었다.

▶1889년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출생 ▶1978년 국산 유도탄 시험발사 성공

정보관리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