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뭐 될래?"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실을 찾을 때마다 기자가 학생들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문제아에게 내뱉는 비아냥처럼 들리지만,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진지함만 담으면 진로 문제를 묻는데 이처럼 명쾌한 표현도 드물다.
아이들의 대답은 백에 구십아홉 침묵이다. 질문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로 할 말이 없어서다. 어쩔 수 없이 질문을 바꾼다.
"대학은 무슨 학과에 가고 싶니?"
열에 한둘이 겨우 대답한다. 의대나 법대, 경영대 등 인기학과 일색이다. 대개는 그런 학과에 진학할 실력이 되는 학생들이고, 열망이 강한 학생 몇이 섞인다. 그렇다면 열에 여덟아홉은? 역시 대답할 말이 없다.
선택에 대한 고민은 고3이 다 끝나고, 수능시험 성적이 나올 때에야 시작된다. 인기학과에 갈 점수가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 점수로 어디를 갈 수 있을지 차선을 생각하게 된다. 현행 7차 교육과정이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하다.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교육 체제라며 7차 교육과정이 나온 지 10년이 돼 간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고교에 도입된 지도 5년이 지났다.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개인의 다양성 계발과 창의적 인간 육성이라는 목표가 과연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할 시기도 한참 지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교육부를 비롯한 연구기관, 연구자들은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문제점을 반영해 8차 교육과정을 내놓으면 된다는 식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교육과정대로라면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전공이나 학문에 대한 정보와 자료 등은 중학교, 늦어도 고교 1학년 때까지는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다양한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안내와 상담을 받고 흥미와 적성, 능력에 맞는 진로를 찾아야 한다. 고교 2, 3학년 때 배울 교과목은 성격과 내용, 진로와의 관련성 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뒤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의 눈은 휘둥그래진다. 무슨 말이냐는 표정들이다. 이쯤 되면 보다 못한 교사가 한 마디 거든다. "법대 가려는 애가 법과 사회를 못 배우고, 경제학과 가고 싶은 애가 경제를 못 배우는 게 학교 현실입니다. 여건과 역량이 안 되니 이상과 현실이 겉도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는 사회적 낭비가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공무원 시험에 우르르 몰리고,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달려가고, 취업을 위해 편입을 하고 다른 전공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이 똑똑하게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개인으로 보면 그보다 더 큰 불행도 없다. 어려서부터 학력이나 점수에 연연할 게 아니라 아이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함께 탐색해서 "커서 뭐 될래?"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7차 교육과정 시대에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인 듯하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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