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과형 논술 수업 '가능성이 보인다'

입력 2007-09-11 07:39:31

▲ 대구 경명여고에서 통합교과형 논술 공개수업을 가지고 있다.
▲ 대구 경명여고에서 통합교과형 논술 공개수업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앞다투어 도입한다고 했을 때, 교육계에서는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학교 교육이 과연 통합교과형 논술고사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와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셌다. 일부에서는 사교육만 번성하게 해 학교 교육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 것이란 비관도 나왔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학교는 과연 변했을까. 통합교과형 논술고사에 대비는 하고 있을까. 사교육시장에 기능을 온전히 빼앗긴 건 아닐까. 꼬리를 무는 의문을 풀기 위해 8일 통합교과 논술팀 대외 공개수업이 열리는 대구 경명여고를 찾았다. 그리고 희망을 보았다. 통합교과형 논술이 학교 교육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1. 수업 전

8일 오전 8시 30분. 토요휴업일인데도 경명여고 교무실은 소란하다. 토요휴업일마다 열리는 통합교과논술 수업 때문이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함께 수업을 준비했던 교사들은 마지막으로 자료를 점검한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자료들이다. 국어과와 사회과, 수학과와 과학과 교사들이 매일 만나서 수업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문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교과통합이 어색했는데 두 학기째 접어드니 전체 과정이 익숙해졌다. 오늘은 대구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하기 때문에 교무실이 북적거린다.

#2. 첫 시간 : 읽기와 토론

오전 9시. 1차시가 시작된다. 논술반은 인문·수리 2반씩 각각 15명 내외로 구성돼 있다. 인문1반. 사회과의 서숙향, 정재규 두 교사가 오늘 수업의 전체 과정을 소개한다. 함께 고민할 문제는 '조선 후기를 통해 본 세계화 대응 방식'이다. 3개의 조로 나누어진 학생들이 차례로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을 발표한다. 이어 교사가 북벌과 북학, 우리나라의 개방 과정, 최근의 세계화 등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한다.

읽기 자료가 나눠진다. 자료는 병자호란 당시의 상소문, 북학 관련 자료, 세계화 관련 자료 등 4개.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 학생들이 조별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다. 토론의 방식은 찬반논쟁이 아니라 자유토론이다. 다소 거칠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기발하다. 다른 학교 교사들이 지켜보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교사들은 조별 의견을 정리해주고 발표하게 한다.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90분의 시간이 짧다.

인문2반에서는 국어과 한준희 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 읽기 자료는 박지원의 한 부분. 사회과에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마련을 위한 수업이다. 한 교사는 "처음에는 아무도 발표하려고 하지 않아 참 어려웠습니다. 학생들 스스로 말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지요. 한 마디씩 겨우 꺼내더니 이제는 토론이 붙었다 하면 막힘 없이 이어집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습관이 들었어요."

3, 4반은 자연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모였다. 수업 주제는 '물의 본질과 사용 방법'. 3반에서는 수학과의 임필상 교사가 함수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 뒤 학생들이 풀어보고 나와서 설명하게 했다. 4반에서는 과학과의 서원형 교사가 수리과학논술 이론을 설명하고 물과 관련된 자료를 나눠준 뒤 읽고 토론하게 했다.

#3. 둘째 시간 : 교사 바꾸기

20분을 휴식한 뒤 둘째 시간에는 교사가 바뀐다. 국어과와 사회과, 수학과와 과학과 교사들이 각각 교실을 바꾸어 수업을 진행한다. 90분 동안 학생들은 전 시간과 다른 측면에서 주제를 탐구하고 자료를 읽고 토론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교과통합을 이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4. 오후 시간 : 쓰기와 첨삭

점심시간 이후 셋째 시간에는 글을 쓴다. 4~5개 정도의 논제가 담긴 문제지가 주어진다. 각 논제는 300~400자 정도이고 마지막 문제는 통합문항으로 1천200자 정도다. 분량이 많은 듯하지만 오전에 생각의 틀이 정리됐기 때문에 논술문 작성에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넷째 시간은 첨삭과 종합토론 시간이다. 인문반과 수리반으로 모여서 진행된다. 친구가 쓴 글을 돌려가며 읽은 뒤 부족한 부분이나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 그렇게 진행된 수업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됐다.

학생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다. 자신이 수업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가하고 스스로 내용을 정리해 논술문을 쓰기까지 전 과정이 자기주도적이다. 통합교과형 논술 수업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학생들은 홈페이지에 논술문을 올린다. 교사들은 댓글을 통해 간단하게 첨삭을 해 준다.

#5. 점심시간 : 공개수업 협의회

점심시간에 수업을 진행한 교사들과 참관한 교사들 사이에 토론이 이뤄졌다. 햄버거에 콜라 하나로도 풍성하다. 한준희 경명여고 교사가 "매번 준비를 열심히 하지만 고민의 흔적만 남을 뿐 성과를 내기가 많이 힘들다."고 말문을 열었다. 다른 학교 교사들의 의견이 꼬리를 물었다. 정창엽 동부고 교사는 "교과 통합이 어떤 것인가 느낄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며 "토론 시간이 긴데 학생들의 의견이 비슷해지는 문제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광수 경원고 교사는 "토론과 첨삭이라는 골칫거리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학교 간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교류를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한원경 대구시 교육청 장학사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빚어낸 걸작품을 감상한 느낌"이라며 "대구교육을 바꾸고 공교육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시발점을 만들자."고 했다.

경명여교 통합교과 논술팀 교사들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지금의 학교 수업 방식으로는 21세기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습니다. 고전적 방식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통합교과형 논술 수업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학교 수업이 이런 형태로 진행돼야 하고, 충분히 가능합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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