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터치)서울대 공대 교수공채 실패

입력 2007-09-04 07:45:02

서울대 공대가 5개 학부의 신임 교수 7명을 공개 채용하려다 지원자 40명에게 모두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몇 가지로 가닥이 잡힌다. 학생들은 각각의 분석들이 어떤 측면에서 설득력을 갖고, 어떤 측면에서 논리적 또는 현실적인 허점이 발견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는 단지 서울대 공대의 교수 공채 실패라는 단발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 이공계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극복하느냐를 규정짓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 인재 유인책이 없다

쓸 만한 인재들이 대학을 외면하는 건 기업이나 연구소에 비해 낮은 대우, 열악한 연구 환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선 나온다. '연공서열에 따라 보수를 균등 지급하는 식의 평등지상주의로는 세계적 석학은커녕 웬만큼 경쟁력을 갖춘 교수진도 확보하기 어렵다. 능력과 업적에 걸맞게 대우하면서 모셔가다시피 하는 기업이나 외국의 대학을 두고 국내 대학을 선택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신문 사설)

해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연구자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걸 꺼리는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표면적으로는 외국에 비해 절반 수준의 연봉, 열악한 연구환경, 비싼 집값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꼽히지만 이는 예전에도 있었던 문제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다. 20, 30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욱 차이가 나도 많은 우수 인력들이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녀교육이라는 넘기 힘든 걸림돌이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수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서로 헤어져 사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의 어린 자녀를 외국에 보내 교육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소위 기러기 가족으로 인한 국가사회적 손실은 얼마나 될지 짐작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서 자리 잡았거나 혹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자녀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할 확률은 매우 낮다.'(신문 칼럼)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신성장동력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공계열 박사 학위를 딴 뒤 현지에 눌러앉은 인재들의 비율은 1992~95년 20.2%에서 2000~03년 46.3%로 급증했다. 사람 수로 따지면 887명에서 2천409명으로 2.7배나 늘어났다.

▨ 대학 자체 문제도 심각

서울대가 자체적으로 인재들을 끌어들일 만한 대책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그동안은 쌓아온 명성 위에서 근근이 버텨왔지만 서울대라는 이름만으로 인재들이 달려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해답은 뻔히 보인다. '최고급 연구 인력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대학의 제도와 문화에서 평등주의를 과감히 탈피하고 업적과 능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인재를 찾아나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학장이나 학과장의 큰 역할 중 하나가 학회에 나가 유망한 젊은 학자를 찾아보는 일이라고 한다.'(신문 칼럼)

외국 대학이나 기업, 연구소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연구 인프라 개선에도 대학이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실험에 필수적인 물, 공기, 진공 등과 같은 기본 인프라조차도 각 연구실에서 개별적으로 마련해야 했다. 지금도 연구실 청소는 대학원생이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프라 구축을 연구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 부수 조건으로 보는 정부나 대학의 시각은 예산확보보다 더 큰 장벽이다.'(신문 칼럼)

그러나 현실은 대학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기에 너무나 요원하다. '서울대가 기존 규정을 깨고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면 실력 있는 교수를 데려올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립대의 경직된 운영이 발목을 잡는다. 열악한 여건에서 오히려 실력 있는 인재들이 지원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외국에 있는 한국 출신 인재들을 향해 아무런 인센티브도 없이 애국심으로 호소해서 될 일도 아니다.'(신문 칼럼)

'서울대가 정부기관인 국립대로 존속하는 한 획기적인 개선은 불가능하다. 법인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할 때 가능할 것이다.' 같은 주장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 이공계 전반의 문제점

서울대 공대의 이번 교수 공채 실패는 우리 이공계 대학과 연구소 등이 안고 있는 현실을 다른 측면에서 반영하고 있다. 우선 서울대 공대의 교수 선발 기준이 타당한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서울대의 눈높이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져 웬만한 업적과 실력으로는 교수로 뽑히기가 어려워졌고, 때문에 이번 공채에 적격자가 없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만하냐는 것이다.

관행적인 채용 시스템, 연구 실적 위주의 평가가 인재 발굴에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이 따른다. '교수 지원자들의 업적과 능력이 서울대 공대가 설정해 놓은 담을 넘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 교수들이 숨은 인재를 못 찾았거나, 기존의 채용시스템을 관행적으로 적용하지는 않았을까. 또 여러 분야에 걸쳐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는 인재, 이른바 컨버전스 인재가 외국에선 쓸모가 있었으나 국내에선 오히려 홀대받는 것은 아닌가.'(신문 칼럼)

그보다 더 우려스런 문제는 미처 검증이 끝나지 않은 신진 과학자가 대학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는 현실이다. '국내의 일류 대학들이 모두 신진 과학자는 외면하고 외국 대학이나 국내의 형편이 어려운 대학에서 어렵게 실적을 쌓은 인재를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은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투자하는 곳이다. 지금까지의 실적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더 중요하게 평가돼야만 한다.'(신문 칼럼)

우리 이공계에 희망을 심기 위해서는 보다 넓게 보고 인재 양성의 큰 틀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하다. '돈과 제도만으로 우수과학자를 유혹할 수는 없다. 연봉이 적더라도 실험실 환경과 연구 문화가 선진적이면 고급 과학인을 유치할 수 있다.'는 연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