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에 목숨 건다

입력 2007-08-30 16:35:08

섹시함이 새삼 논란의 도마위에 오를 일은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관능미'는 남녀 공히 최고의 매력 중 하나로 손꼽혔으니 말이다. 비너스의 풍만한 몸매나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강조한 몇 백년 전 미술작품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아가는 한 '섹시함'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다.

이는 여성들의 패션의 역사만 훑어봐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잘록한 허리, 가슴과 힙을 강조한 실루엣은 패션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다. 국내에는 1970년대 미니스커트가 등장하면서 패션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고, 그 이후 1990년대 들면서 급격하게 옷차림이 '섹시 코드'로 급반전 됐다. 배꼽을 노출하는 패션이 등장하면서 풍기문란에다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등 말도 많았던 시절이 바로 이때였다.

그리고 2000년을 넘어서며 더 이상 섹시함을 느러내는 노출 의상은 더 이상 논란 거리가 아니다. 섹시함이 최고의 찬사가 되면서 여성들은 너도 나도 섹시해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렇게 된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지대하다.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단어였던 '쭉쭉빵빵'정도는 예사고 'S라인' 등의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섹시함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미디어다.

그렇다보니 여성들은 피곤해졌다. 노출을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인 바디라인을 갖추는 것이 필수. 여기저기 처지고 접히는 살들을 자랑하듯 드러내놓고 싶은 여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가슴을 키우고, 지방을 흡입하고, 다리 종아리 근육을 미끈하게 만드는 '대공사'까지 감행한다. 특히 여성의 신체 어느 곳보다도 성적인 의미가 강한 가슴에 목숨거는 여성들이 줄을 잇는다. 최근에는 가슴 성형 보정물인 '코히시브 실리콘 젤'의 국내 시판이 허용되면서 추석 무렵까지의 성형 예약이 모두 끝났을 정도로 가슴성형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중적인 남자의 시선

대다수의 남자들은 이야기한다. "너무 심한 노출은 천박해보여." 하지만 일단 몸매 착한('늘씬하다'를 요즘 이렇게 표현한다) 여성이 짧은 스커트 입은 것만 봐도 먼저 고개가 돌아가는 것이 바로 남자다. 그러면서 "내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그러고 다니는 모습은 차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또 남자다.

왜 그럴까? 그에대해 이동호(34) 씨가 내놓은 답이다. "시각적인 동물이다보니 일단 성적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여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서 꽂히는 것이 남자입니다. 하지만 '낮에는 정숙한 아내, 밤에는 요부'라는 말처럼 이중적인 시선을 가졌지요. 아마 교육의 영향 때문일까요? 내가 쳐다보는 것은 괜찮지만 남들이 느끼한 시선으로 내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용납하기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의 심리입니다. 여성의 노출은 남자들에게 다만 눈요깃거리랄까요."

이런 경향은 남자들의 선호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TV에서 몸을 드러내고 연신 춤을 추는 여가수들에게 시선이 꽂히지만 그들이 가장 매력적인 연애상대로 꼽는 것은 단아한 모습의 여자 아나운서들. 10명 중 9명은 섹시 대명사인 '이효리'보다는 '노현정'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재한(32) 씨는 "육체적 섹시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며 "나도 마찬가지지만 상당수의 남성들이 단정한 외모에다 지적인 면모, 착한 마음씨까지 갖춘 여성에게 오히려 섹시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알수 없는 여자의 마음

남자들은 말한다. 제발 좀 봐 달라는 듯 노출패션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길래 눈길을 줬을 뿐인데, 왜 자신을 짐승 쳐다보듯 하냐고. 굳이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와 손수건을 다리를 가리고, 가슴이 파여진 옷을 입고 나와 상체를 숙일 때는 손으로 가리는 행동도 납득하기 힘들단다.

이건 여자들의 심리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여성들이 섹시함을 과시하는데는 남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도 있지만 자기만족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주목을 끌 수 있는 차림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는다는 그 사실이 어깨와 다리살을 훤히 드러낸 그녀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요소'라는 것.

물론 노출이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시선에 굴복한 성상품화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것은 여성들의 '자의식'을 깡그리 무시한 남성들만의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주장이다.

최지은(27'여) 씨는 "남자들에게만 잘보이기 위한 것이란 남성 중심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여성들이 몸매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남성의 시선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을 '성적인 상품'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여주는데까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보돼 그 이상을 상상하며 끈적대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쨋든 결론은 보일락 말락

여성들의 상당수는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내면에 감춰져 있다. 몸매만 된다면 얼마든지 노출 패션을 하고 싶다는 여성들이 대다수일 정도. 하지만 이런 섹시한 패션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그래도 좀 심한거 아냐? 적당히 선을 지켜야지." '내가하면 로멘스고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남자들도 별 다르지 않다. 울퉁불퉁 근육맨, 나도 얼마든지 여성들에게 섹스어필 하고 싶지만 몸에 쫙 달라붙는 졸티에 탄탄한 가슴의 그녀석들을 보면 입맛이 찝찔해오는 것이 보통의 남자들이다.

이런 이중적인 심리가 교묘하게 합일점을 찾은 것이 바로 '보일락 말락'이다. 은근슬쩍 보일듯 말듯 감춰진 섹시함.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매력이라고 대부분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실험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북대 대학원 심리학과 백영호 씨의 논문 '여성 모델의 노출 수준에 따른 감정 반응과 광고 효과'에 따르면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것이 바로 '보일락 말락 부분 노출'이라는 것. 완전 노출, 부분 노출, 무 노출의 여성 모델이 등장한 광고를 놓고 실험을 했더니 부분노출 모델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 다음이 무 노출 모델,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완전노출 모델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완전히 신체를 노출한 여성모델 광고는 부정적이었다고.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시선을 교란하며 금기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마저 살랑살랑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여성과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섹시함 속에 감춰진 매력'이다. 이효리가 단순히 '섹시한 노출'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 섹시한 외모 속에 과장되지 않은 그녀의 털털한 성격이 이효리를 최고의 연예인으로 만들어준 숨은 공신이라는 것.

강상구(30) 씨는 "단순한 하나의 이미지만으로는 싫증내기 십상"이라며 "섹시한 차림의 여자가 솔직담백한 속내를 드러낼 때, 도도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의 여성이 때로는 여린 여성의 감정을 드러낼 때, 커리어우먼이 의외의 푼수기를 가지고 있을 때 좀 더 사람이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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