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살아 흐르는 신천을 소망한다

입력 2007-08-25 09:12:51

상류에 큰비가 내린 날의 신천은 유난히도 가까이 느껴진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신천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바짝 마른 가슴을 드러낸 삭막한 하천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세상의 긴 시간처럼 물줄기를 이끌고 가는 물의 흐름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달리는 차창너머로 물을 가득 담은 신천이 출렁인다.

물속에 잠긴 굴곡을 지나는 물줄기는 마치 한 마리 싱싱한 잉어의 등줄기가 요동치는 듯한 움직임이다. 둔치에는 촉촉이 물기 젖은 나무들이 생기가 넘치고, 냇바닥의 키가 우뚝 자란 풀들은 저마다 푸르름을 한껏 뽐내고 있다.

아침 햇살 받은 잎 넓은 나뭇잎에서는 잎맥이 손금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물처럼 얽힌 잎맥에서 초록 피가 용솟음이라도 치듯 나무 잎사귀들이 바람결에 꿈틀댄다. 차창을 열고 천천히 그 곁을 지나간다. 순간 풋풋한 풀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오늘 아침 신천은 더욱 활기가 넘친다. 출·퇴근길의 신천은 늘 새롭게 내 가까이 다가온다.

초록 생명들의 싱그러운 삶의 모습들과 굽이치는 물의 흐름이 잘 어우러진 신천은 한 폭의 한국화다. 그것을 배경이라도 한 듯 물 얕은 곳에서는 어깨 구부정한 왜가리가 발을 담그고 있다. 수심 깊은 물에서는 아침 먹을거리를 장만하는지 자맥질하는 물오리가 눈길을 끈다. 오랜만에 보는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냇바닥 가득 불어난 물이 수중보를 넘어 떨어지면서 허연 포말을 일으킨다. 달리던 차에서 내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의 흐름에 실려 지난밤의 시름들이 어느새 말끔히 씻겨가는 듯하다. 이른 새벽에 나왔는지 낚시꾼 몇 사람이 포말이 되어 떨어지는 수중보 아래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지금 신천은 정녕 살아 흐르는가.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신천은 대구 시민들의 소중한 생태환경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신천은 시민들의 친근한 생활공간이며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노년층에게는 어린 날 샛강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 신천이다.

그들의 어릴 적 여름날이면 벌거숭이 河童(하동)이 되어 군데군데 물 고인 웅덩이에서 멱을 감고, 한겨울 꽁꽁 언 냇바닥에서 온종일 얼음지치던 날의 향수가 남아 있는 곳이 신천이 아니던가. 이제는 다만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하천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고 수심이 고루 깊지 않아 유람선은 띄우지 못하더라도, 늘 맑은 물이 흐르는 신천을 소망하지 않는 대구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언젠가 신천을 지나면서 오랜 가뭄으로 냇바닥이 마르고,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서 악취가 풍기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적이 있다.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한 곳에 오래 머물면/온갖 잡동사니 섞여/몸살을 앓은 물/살이 썩는다.//쉬지 않고/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흐르는 물이 되리라.//아아, 그래서 그 기다란 몸을/말없이 줄줄이 끌고/강은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그 흐름 따라/이 땅 사람들/오늘까지 흘러오고/그 흐름 따라/내일까지 아득히 흘러가리니…'.('쉬지 않고 흐르는 것은' 전문)

신천은 대구 시민에게 있어 삶의 젖줄과 같은 소중한 자연이다. 이곳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나와 꿈을 가꾸는 어린 童心(동심)이 있고, 산책로를 함께 걷는 이웃들의 交感(교감)이 있다. 이른 아침마다 미처 덜 깬 잠에서 깨어나려는 기지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희망찬 발걸음들이 있다.

매일 신천 東路(동로)를 통해 출·퇴근하기를 두 해 째,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보는 모습들은 언제나 정겹다. 이 길을 곱게 가꾸는 아름다운 손길들이 있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어가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천 둔치의 산책길이 더욱 길게 이어지고, 멈추지 않고 늘 살아 흐르는 신천이기를 소망한다.

권영세(아동문학가·대구 수성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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