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럼] 문화패권주의의 뒤안길

입력 2007-08-21 07:26:30

허위학력 소동으로 사회가 뒤숭숭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속속 드러나는 우리의 치부가 이토록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을 넘어 슬프다. 유명 영어강사도, 유명 만화가도, 유명 극단 대표도,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유명 연극배우도, 아니 그대마저도?

대부분 학력보다는 재능과 능력으로 평가되어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들이기에 더 슬프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대체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과도한 학력중시풍조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이 무서운 허위 학력의 해일은 잘나가던 미술계 모 교수의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2008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선임된 모 교수의 가짜 학위 소동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팽배한 학력우선주의, 특히 외국학위신봉주의의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국제적 미술행사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광주비엔날레의 감독이라면 한국 미술계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요직이다. 미술계 내부에서 가짜 외국학위로 의심을 받아오던 모 교수가 그 자리에 선임된 것에 의아스러워할 사이도 없이, 공중파 뉴스는 물론이고 각종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 1순위에 오른 것은 슬픈 '치욕의 영광'이다. 가짜 외국 학위로 포장된 이력은 국내 A급 사립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로, 대학교수로,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이어지는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 미술계가, 아니 우리 사회가 서구 문화패권주의에 동참해보려는 가열찬 욕망이 이와 같은 충격적 사건을 낳고야 말았으니 참담할 따름이다.

이 사건은 침체의 늪을 헤매던 미술시장이 20년 만의 호황이라 할 정도로 활기를 띨 때, 나아가 새로운 재테크의 장으로 대중에게까지 관심이 집중될 시점에 터졌다. 일부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조명을 받으며 약진하는 동안, 다른 한편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고 선명하였다. 허위학력 사건이 터지기 전 밝혀진 미술계의 또 다른 불미스러운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미술대전') 비리는 화려한 포장으로 감춰진 우리 사회의 속내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미술계에서 학벌에 못지않게 대중친화적인 포장법은 단연 미술대전 수상 이력일 것이다. 이른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단체'로 자처하는 대한민국미술협회(이하 '미협')에서 주관하는 미술대전의 심사비리 의혹은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었으나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어서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스럽다. 결국, 정부 포상도 중단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지원 중단결정으로 이어졌다.

어찌 보면, 미술대전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미협의 비대화와 그에 따른 정치적 집단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정주의와 맞물린 왜곡된 보수주의는 미협의 자정기능을 마비시켜버리기에 충분했으며 옴짝달싹할 수 없는 비대해진 몸집으로 급속히 변모해가는 동시대미술을 수용하기는커녕 그 이름도 거창한 '대한민국 미술대전'이라는 공모전의 전형과 내용 없는 형식주의 예술을 배태하는 숙주가 되었다.

하여, 지각 있는 미술가라면 미술대전에 출품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미협의 회원이 되고자 애쓰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미술대전의 권위를 되찾아보고자 그간 미협에서 추진한 일들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등 정치권력의 직함을 빌린 정부포상제를 만들어 미술대전의 외형을 부풀려보려던 시도는 대표적인 시대착오의 미시파시즘적 발상이었으니 잘못 든 길의 되돌림은 당연하다.

미술계에서 터진 이 두 가지 사건이 가십거리로만 다뤄져선 안 된다. 미술대전이 작가 등단 시스템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아마추어 작가와 일반대중을 편협한 예술관에 머물도록 조장하고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동의를 지속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짚어야 한다. 세계문화의 조류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각종 국제비엔날레의 개최와 성공적 진행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불거진 가짜 학위 소동도 우리가 져야 할 짐이다. 내적으로는 미술대전을 통해 심사 및 포상시스템의 전체주의적 위계질서를 구현하여 일상적 미시파시즘의 내면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가운데, 외적으로는 수입형 비엔날레를 통해 서구 문화패권주의의 소제국으로 등극해보려는 이러한 노력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예술적 가치보다는 상벌과 학벌에 의한 사회 일반의 평가가치가 지배적 가치로 구조화되어가는 현상은 어느 사회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 가치로 굳어져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 문화의 진정한 역동성은 내면화된 일상적 미시파시즘과 서구 문화패권주의의 뒤안길을 과감히 벗어날 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종헌 위덕대 교수·화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