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농촌체험] ⑬영덕 대진마을

입력 2007-08-16 07:07:53

궂은비 멎어가고 시냇물도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 둘러메니 솟구치는 흥겨움을 참을 수가 없구나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연기 자욱한 강과 겹겹이 싸인 산봉우리는 누가 그려낸 그림인가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에서

장마 뒤 맑은 날의 설렘은 시인 묵객이라야만 느끼는 건 아닌가보다. 더욱이 이글거리는 태양과 하얀 파도가 기다리는 바닷가라면? 두 시간여의 버스여행에 지쳤을 법도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에 체험가족들은 모두 들뜬 표정들이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민박집에 짐을 풀어놓자마자 해수욕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오늘의 첫 체험은 평범한 해수욕이 아니라 '후릿그물 당기기'이다. 통통배 하나가 가까운 바다에 그물을 풀어놓으면 양쪽 끝을 뭍에서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전통어로방식이다.

마지막 여름 정취를 즐기려 온 피서객들까지 합세하면서 조용하던 백사장이 이내 어수선해진다. 영차영차, 모두들 기대에 부푼 채 힘껏 그물을 당기고 파다닥 파다닥, 놀란 전어들은 손길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엄마, 물고기가 정말 많아요. 이거 우리가 전부 다 먹을 수 있을까요?"

바닷가답게 회덮밥으로 서둘러 저녁을 해결한 뒤 땅거미가 지기 전에 이웃마을인 괴시리를 찾는다. 영양 남씨 집성촌인 이곳은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 지금도 200년이 넘은 고택 30채가 잘 보존돼 있어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믐이라 달은 없지만 별은 무수히 많다. 미처 공부해두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저 많은 별 중에 고작 아는 것이라곤 북두칠성뿐이니…. 남북공동회담 개최 소식이 전해진 때문일까. 아이들이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모닥불에서 익어가는 전어를 더욱 고소하게 한다.

"이번에 오신 분들은 복이 참 많은가 봅니다. 그렇게 비 온다고 했는데도 빗방울은커녕 날씨만 좋잖습니까? 저희가 후릿그물 당기기 체험을 벌써 몇 번 했었는데 오늘처럼 많이 잡기는 처음입니다." 소주잔을 권하는 홍철한 마을 사무장의 덕담이 유쾌하기만 하다.

이튿날 아침, 동해 일출을 보느라 새벽잠을 설친 체험객들이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어부체험에 나선다. 조그만 어선에 올라타고 멍게 양식장으로 향하는 동안 갑판을 넘나드는 파도에 옷은 다 젖었지만 아랑곳없다. 탄성인지 비명인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들이 뱃전을 울리지만 여름바다 드라이브는 즐겁기만 하다.

배는 이내 부표들이 떠있는 양식장에 도착하고 선상에서 갓 잡아올린 멍게를 잘라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맛본다.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 수 없다. 곧이어 질문이 쏟아지고 김영광 대진리 어촌계장은 대답해주느라 진땀을 흘린다. "저 넓은 바다에 말뚝을 박을 수도 없고 담장을 쌓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내 양식장인 줄 아세요?" "멍게는 얼마나 키워야 돼요?"

다시 돌아온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얼마 전 우럭 치어를 방류한 터라 코흘리개들도 손맛을 꽤나 본다. 갯지렁이를 능숙하게 꿰고 챔질도 제법이다. 바닷가 한쪽 구석에서는 아이들이 조그만 게를 잡느라 난리다. 해초까지 뜯어 넣으니 생수병이 예쁜 수족관으로 탈바꿈한다.

어부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재현해놓은 삼사해상공원 어촌민속전시관에 들렀다 대구로 오는 길, 체험가족들의 마음은 풍요롭다. "아빠, 어부 아저씨가 너무 힘들게 물고기를 잡으셨어요. 앞으로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할래요."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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