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사람처럼 자신의 운명을 타고나는가 보다. 지난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소개된 수제본 책 한 권이 한 미술 애호가에게 880만 원에 팔렸다는 기사를 보니 말이다. 일찍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는 매년 100개가 넘는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 북페어에는 대중적인 출판물 코너와 달리 우리에게 생소해서 이질감마저 느끼는 코너가 있다.
자신들의 책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그 자리에서 팔기도 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아티스트 북' '아트 북'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우선 이러한 책들은 대상을 '형태'로부터 인식하는 것이고 문학적인 개념보다는 '예술'적인 개념으로 접근한다.
60년 전 활자 디자이너이자 이론가인 독일의 안치홀드는 전통적인 책의 형태에 대한 '대안'은 없다고 결론 내린 적이 있지만, 조형성이 뛰어난 책, 구조와 재료가 독특한 책, 개념을 중시한 책 등 기발하고 신선한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미 잠재능력을 갖고 현대미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트 북'은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마음껏 시도하는 하나의 유희이자 오브제로서의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다.
일반 문서 중심의 인쇄물보다는 작가 스스로 내용을 창작하고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바인딩한 소중한 책을 갖는 기쁨은 아트 북의 소장가치를 극대화한다. 이러한 책들은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소수의 열광적인 북 컬렉터들을 상대로 또는 특별한 날을 위한 이벤트용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이들 책은 책에 대한 반응은 글을 '읽기 전'에 일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손으로 잡았을 때의 느낌, 종이의 냄새와 무게감, 독특한 제본 등으로 책을 더욱 책답게 만드는 요소로서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가능한 독자들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감상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종이의 변화까지도 독자들이 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흔히 시중의 유명한 시나 소설집, 또는 권위 있는 이론서들처럼 문학적 가치와 검증이 책의 필수 조건이라면 미술가나 디자이너에게는 예술적·심미적 가치를 부여받은 물건 역시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책은 하나의 '물리적 주체'이며 '미적 대상물'이 되는 셈이다. 사진술의 등장으로 인해 위축과 소멸의 길을 걸을 것 같았던 회화는 오히려 사진으로 인해 예술사조를 주도해 나가는 현상처럼 앞으로 책도 컴퓨터와 정보통신의 기술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박병철(대구대 조형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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