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역에 조각품 전시…생생한 예술현장 소화
2007년 여름 유럽은 미술의 열정으로 뜨겁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상당수의 미술가와 미술평론가·화랑경영자· 미술애호가들이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10년 주기의 독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와 5년 주기의 '카셀 도큐멘타'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미술행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10년 후에나 다시 온다는 생각에 모두들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직접 행사장을 둘러 보고 온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인 박소영 씨가 그 생생한 현장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리고 2000년 이후 개관한 독일과 스위스의 특별한 미술관과 전시도 안내한다.
◎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enster 07)
1977년 시작된 이후 10년마다 개최되는 조각프로젝트 덕분에 독일 서북부의 소도시 뮌스터는 이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0년이란 주기는 새로운 기억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의 단위이고, 최고 권위의 예술가들이 가장 실험적인 작품들을 구상하고 도시 내에 특정한 설치 장소를 물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를 통해 조각공원에 설치된 공공조각이 아니라, 뮌스터란 도시의 역사적·지질학적·생태적 환경을 숙고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예술언어로 승화시켜 시민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생생한 예술현장이 제시된다. 6월 17일부터 9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행사에는 36명의 작가가 참가해 모두 34개의 프로젝트를 도시 전역에 실현시켰다.
공간적 맥락과 관찰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월링거(Mark Wallinger)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도시를 감싸는 거대한 서클을 작품으로 구상했다. 아(Aa) 호수를 가로지르는 토르민 다리에 이르면 꿈결에서 들리는 듯한 잔잔한 멜로디로 관람객의 호기심을 끄는 작품 '잃어버린 반영'과 만나게 된다.
작가 필립스(Susan Philipsz)가 직접 부르는 오펜 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속 뱃노래는 한 소절이 끝나면 다리 맞은편에서 메아리가 되어 다시 울려 퍼진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단단한 조각 대신 영상작업, 퍼포먼스 등이 적극적으로 도입된 점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거대한 토목공사 같은 작품들도 눈에 띈다. 거꾸로 된 피라미드형으로 땅을 파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른 '우울의 사각지대'는 인간의 몸과 공간의 구조를 결합시킨 작품이다. 나우만(Bruce Nauman)이 원래 1977년에 구상했으나 뮌스터 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올해 비로소 실현된 작품이라고 한다.
베허만(Annette Wehrmann)은 도시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온천을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실제 상황에 앞서 가상 공사판을 펼쳤다. 메츠거(Gustav Metzger)도 매일 다른 장소로 직사각형 돌덩어리들을 옮겨 설치하면서 물체와 장소의 상호연관성을 다채롭게 연출한다.
17세기 신·구교간 분쟁시 가톨릭을 수호하다 아픈 역사를 지닌 뮌스터의 역사적 상황을 깊이 인식한 작품들도 있다. 비즐(Guillaume Bijl)은 깊게 땅을 파고 그 안에 닭 형상(베드로가 닭이 우는 새벽이 오기 전 예수를 세 번 배반했다는 성서이야기를 상징)이 꽂힌 가톨릭 성당 첨탑을 구축하여 마치 고고학적 발굴현장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보여준다.
'사회적인 조각가' 겐즈켄(Isa Genzken)은 오래 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야만적 밴덜리즘(Vandalism) 전통이 오늘날에도 어린이 성추행 사건 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고발하는 작품을 보여준다.
바로크 교회 건축물 사이에 설치된 실험적인 조각품들을 수용하지 못했던 시민들의 분노와 함께 태동했던 조각프로젝트는 4번의 행사를 거치면서 당당히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출발 당시 여론에 굴하지 않고 시민들을 설득했던 뮌스터 시장과 도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 한 공무원들의 의지 덕분이다. 뮌스터 시는 지난 프로젝트 때 전시된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총 39점을 구입했다.
올덴버그(Claes Oldenberg)의 거대한 당구공, 슈테(Thomas Schuetter)의 체리,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양팔이 떨어져 나간 예수조각상을 보존하는 성당 가까이에 중국작가 황용핑이 설치한, 50개의 손들로 구성된 천수불이 그것들 중 일부이다. 이제 이 작품들은 교회건물과 자전거로 대표되던 뮌스터 시의 상징물을 대신하고 있다.
'무엇이 현시대의 조각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공공장소에 위치하게 되면서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기하면서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조각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그리고 미술시장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자세로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미래를 지킬 것"이라는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Kasper Koenig)의 발언은 이 행사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박소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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