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고 음악도 디자인을 통해 더욱 강렬한 생명을 얻고 있다.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을 들으며 하늘의 그림을 잡아내고 호흡마저 급박하게 하는 데쓰 메탈은 세기말적인 비주얼로 환원된다. 마치 소리가 공간과 시간을 디자인하는 격이다. 때론 디자인이 소리를 불러오기도 한다. 보이지 않으면 듣지도 말라는 듯.
오래전 우연히, 50년대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의 오선지 위에 그리던 기존의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그래픽 노테이션'이라는 악보자료를 보고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기존의 악보는 단순히 음을 재생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 악보는 다다이즘, 네오다다이즘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림 속에 규칙, 즉 점·선·면의 기호들을 통해 연주자들이 임의대로 해석하고 연주해서 전혀 다른 음악이 우연히 만들어진다는 점과 그 악보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디자인적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타이포디자인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또 하나는 '레이건'이라는 음악잡지이다. 재미있는 디자인적 발상은 잡지의 편집이나 그리드는 물론 제호 디자인까지 매달 음악의 해석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디렉터 데빗 캅슨의 디자인적 승리이다.
얼마 전, 뮤지션 박진영의 인터뷰에서 미국 활동 중에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세계적 뮤지션 중 50% 이상이 악보를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음학(音學)이 아니라 음악(音樂), 즉 음을 진정으로 즐길 뿐이란다. 디자인에서도 그 관점과 해석을 넓혀 볼 필요성이 있다. 영국에서는 국민 총소득의 15% 이상을 음악 산업이 차지하여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음악과 함께 디자이닝되고 즐긴다.
음악은 있으되 이것이 비주얼로 소통되는 '시각언어'가 부족한 게 우리의 꼴이다. 뮤지션은 있으되 그들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와 패션 디자이너도 부족하다. 따라서 독창적인 음악이 독창적인 '간지'로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가치 있는 음악은 가치 있는 디자인을 만나야 한다. 음악과 디자인, 그리고 미술은 내러티브가 없는 표현양식이다. 더없이 감성적이고 더없이 철학적이며 접하는 이와 가장 빠르게 소통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결국, 음악과 디자인은 어쩌면 한 가지만으로는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의 다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전략이든 간에 앞으로 음악과 디자인은 함께할 때가 가장 행복할 것만 같다.
박병철(대구대 조형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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