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평범한 행위도 비범한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무게가 들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근사하게 보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거철 입후보자들의 약력에는 무슨 무슨 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이 빠짐없이 들어 있고, 지리산 자락에서 뱀을 잡아 끓여 파는 땅꾼조차도 '뱀탕집'이 아니라 '건강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거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골목길 담벼락에 붙어있는 '채무 변제 연구소· 011-0000-0000'란 전단지가 눈에 띄어 자세히 보니 그 연락처 아래 작은 글씨로 '빌려주고 못 받은 돈 찾아 드림'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도대체 되돌려 받지 못한 돈을 찾아주는데 무슨 심오하게 연구해야 할 거리가 있기나 한 걸까, 이건 필시 조직 폭력배 집단의 위장술이리라는 생각에 혼자 웃은 적이 있습니다.
연구란 사물을 학문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조사하여 그 이치를 밝히는 일입니다. 과학적 사고를 작동하여 삶에 유용한 지식이나 원리를 알아내는 일이지요.
철학자 베이컨의 우화는, 권위와 편견에 짓눌려 연구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중세 유럽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1432년, 영국 왕립학회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 간에 '말의 이가 몇 개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심한 논쟁이 벌어졌답니다. 학자들은 말에 관한 각종 서적들을 들추며 13일을 보냈으나 그 누구도 말의 이가 몇 개인지에 관해 기록된 책을 찾을 수 없어 실의에 빠졌답니다. 그때 학자 대열에 간신히 낀 말석의 한 젊은 청년이 노대가들의 눈치를 살피며, "제 생각으로는 말의 입을 벌리고 이가 몇 개인지 세어 보면 알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자 노대가들은 일제히 나서서 "사탄이 성현 및 고인들의 가르침을 거역하게 하고 진리를 찾는 방법을 외면하게 하기 위하여 이 간악하고 뱃심 좋은 초심자를 유혹했다."고 불길처럼 화를 내며 야단법석을 떨었답니다. 그리고는 '역사적 및 이론적 증거의 결핍으로 인하여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은 신비'라고 합의하고 논쟁을 그쳤다나요.
교육 현장의 각종 연구보고서를 볼 때마다 이 베이컨의 우화가 떠오르는 것은 저 혼자만의 기우 때문일까요? 좋은 교육 이론이 훌륭한 교육 실현의 바탕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교육 현장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수정되어야 하며, 그 적합성을 따지는 일은 현장 교원들의 몫입니다. 따라서 막연히 이론의 권위에 의지하여 가방 끈이 길어 보이게 하는 데만 신경 쓸 게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의 들판, 그 구체적 일상의 빛과 소리와 풋풋한 내음을 분별해 보는 데도 정말 신경을 써야지요. 우화 속 젊은 친구의 말처럼, 말의 이빨 수를 알아내자면 말의 입을 벌리고 세어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니까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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