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만나고 싶었던 섬!
이미 60년 전 청마 유치환 시인이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라고 읊으며 애정을 보인 신비의 섬 울릉도.
신비라는 수사용어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그곳에 내 생의 사나흘을 부릴 수 있는 특혜가 고맙기만 했다. 날씨가 청명하고 맑은 바람의 공기가 달다는 느낌이 없었다면 벼랑을 이루며 장관으로 다가선 첨탑의 산 높이에 주눅이 들어 한동안 멍멍했을 것이다.
일행과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으로 오징어 내장탕을 먹으며 별 게 다 먹을거리가 되는구나 싶었다. 화산작용에 의해 형성된 섬인 울릉도. 절벽인 바다 기슭을 개발해 만든 행남 등대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탄의 극치였다.
때로는 웅장하게, 때론 맥박과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은 듯 섬세했다. 쪽빛 동해의 바닷물을 큰 붓에 묻혀 꾹꾹 눌러 그린 몇 폭 산수(山水)의 절경, 우뚝우뚝 솟은 기암절벽들에 몸의 일부를 묻은 채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에서 몸부림치는 생명력과 힘이 느껴졌다.
무한한 자연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곳의 전망대에 오르든 고개를 들면 탁 트인 바다와 불어오는 달디단 바람의 향기를 한량없이 맡을 수 있었다. 얼마나 복된 시간이었던지.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풍경과 섬 해안이 연출하는 풍광을 감상하며 전망대에서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바람에 날려 바다로 떨어지는 환영에 잠시 어지러웠다.
섬은 지천으로 무리를 이루며 곳곳을 점령한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희귀식물인 섬말나리의 군락에 우리는 그저 '와! 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태초의 원시림 속에 들어서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기는 기쁨에 흠뻑 젖었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경사를 최대한 잘 다듬어 만든 오솔길, 나뭇잎의 가장 아름다운 색인 연둣빛으로 둘러싸인 나무의 싱그러운 숨소리, 태하 등대로 오르는 길섶에 태풍 때 밀어닥친 바닷물을 뒤집어써서 아직 소금기가 묻었건만 싱싱하게 살아있는 섬해국, 넘치도록 운치 있는 동백나무 숲 ….
등대를 지나 귀한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가 '두 발짝 뒤로 아름다운 극락길이 기다리고 있음'이라고 말해 아찔하기도 했다.
구름만이 머물 수 있는 고산 낭떠러지에 서 있는 수령 몇 백 년의 향나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막 꽃 피우기 시작한 마가목과 전호초가 펼치는 백색의 향연에 도회에서 찌든 우리 마음이 자연스레 정화되는 감흥을 받았다. 오, 고마운지고…!
섬 안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에서 마침 나물축제가 있어 일행과 동참하며 목화송이 같이 환한 사람들의 인심을 산채 나물밥에 섞어 먹고 호박엿의 달콤한 정을 느끼며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갑고 즐거웠다. 등산길의 촘촘한 이끼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의 청아함과 섬의 특산물이 된 명이(산마늘)의 군락에 우리 마음 또한 부자가 된 듯 넉넉해졌다.
끝모르게 가파른 절벽의 바다 기슭, 섬의 해안선 56.5km 중 아직 길이 되지 못한 4.4km가 개발되면 섬 주민들의 생활이 보다 편해지겠지만, 무분별한 개발은 지양되었으면 한다. 자연의 훼손을 최대한 막아 축복 받은 소중한 천혜의 절경으로 길이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이다.
너무 짧은 일정이라 섬의 곳곳을 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사계절이 뚜렷하여 언제나 색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선 울릉도. 녹색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이 가을빛을 만나 벌일 울릉도의 가을 풍치 또한 상상만으로도 너무 황홀하지 않을까.
손정우(세종 산업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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