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 시대)한번 잘한 PT, 열 로비 안부럽다

입력 2007-05-19 07:25:39

▲ 프레젠테이션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대구은행은 기업설명회(IR)와 경영실적 발표 때만 PT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별 주간회의를 할 때도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보고서를 만들어 빔프로젝트로 PT방식의 회의를 진행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프레젠테이션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대구은행은 기업설명회(IR)와 경영실적 발표 때만 PT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별 주간회의를 할 때도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보고서를 만들어 빔프로젝트로 PT방식의 회의를 진행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군에 입대했을 때 글씨를 또박또박 잘 쓰는 병사들이 차트병으로 뽑혀갔다. 군지휘관에게 보고할 보고서를 일목요연하게 작성하는 게 차트병의 임무였다. 이제 지휘봉으로 차트를 넘기는 그런 보고회는 없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이용, 현란한 도표를 그려넣고 애니메이션과 동영상까지 활용한 '고품격' 프레젠테이션의 시대다.

한 때 대권도전까지 꿈꿨던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보고를 잘하는 전형적인 '차트병'이었다. 공직생활 초기 그가 승승장구하게 된 것의 상당부분은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라는 평가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프레젠테이션(이하 PT)의 시대'다. 국제대회유치와 국책사업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PT에서 시작해서 PT로 끝나는 세상이다. 기업에 입사할 때도 인사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이력과 경력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PT기법을 활용한다.

▶PT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까?

지난 3월27일 케냐의 몸바사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회에서 대구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의 꿈을 이뤘다. 25명의 집행이사 중 15명이 대구를 택했다. 모스크바, 브리즈번 등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싱겁게 대구가 이겼다. 40분간에 걸친 최종 PT가 끝나자 '대구가 이겼다.'는 예측이 이사회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경쟁도시에 비해 감동을 준 대구의 PT가 부동표를 잡은 결과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않은 4월17일. 인천은 쿠웨이트의 쿠웨이트시티에서 열린 제 26차 OCA총회에서 인도의 뉴델리를 32대 13으로 따돌리고 2014년 아시안게임을 따냈다. 두 국제대회 유치의 숨은 공신은 PT였다는 것을 관계자 모두가 인정한다.

▶우리는 왜 PT에 목을 매는가?

대구은행은 지방은행이다. 세계금융시장에서는 시골은행에 불과한 존재지만 2002년 국내은행 중 가장 먼저 기업IR(Invest relations·기업투자설명회)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한 IR은 분기별로 이어졌고 해외IR에도 나섰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실제 시장에서 대구은행은 별 관심없는 지방은행에 불과하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에 단번에 고객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특별한 PT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대구은행의 당시 주가는 2천 원대. 5년이 지난 5월16일 현재 주가는 1만 5천150원. 7배가 넘는 주가상승이 현실화됐다. 부산은행 주가도 제쳤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기업IR에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이 현 CEO"라면서 지금의 주가에도 외국인 주주들이나 애널리스트들과 수년간 신뢰를 쌓아온 사람이 CEO가 된 것에 대한 믿음도 플러스알파가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은행은 이제 모든 회의를 PT방식으로 한다. 파워포인트로 문서를 작성하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A4용지에 간략하게 요약한 두장짜리 문서는 사라졌다. 화성산업과 동원금속 등 상장 지역제조업체들도 대부분 신제품 발표 등 필요할 때마다 PT를 한다.

▶PT가 모든 결과를 좌우할까?

'프리젠테이션의 모든 것','프리젠테이션으로 말하라' 등 서점가에서는 PT에 관한 전문서적들이 쏟아지고 있고 PT를 대행하는 회사들도 성업중이다.

문제는 'PT가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하더라도 고객에게 전달할 내용이 뛰어나지 않다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T는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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