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싫든 좋든 검증 1순위다. 시중에 떠도는 X파일이 출생'병역'여자'자식 문제에 너절한 '찌라시' 수준 의혹을 갖다 붙여도 어쩔 수 없다. 선두주자가 떠 안아야 하는 숙명적 대가다. 그 역시 검증의 칼날이 자신에게 집중하는데 억울해하면서도 도리없이 해명에 나서고 있다. 세상의 큰 관심인 재산문제도 꿀릴 게 하나도 없다는 자신감이다. 두 번의 국회의원과 3수로 서울시장을 지내며 충분히 걸렀다는 태도다.
그는 서울 강남에 빌딩 2채를 비롯해 상가'주택'대지를 가진 부동산 부자다. 상당한 예금과 출자지분 골프회원권도 소유하고 있다. 서울시장 재임시 신고액이 179억 6천750만 원이다. 부동산 값 상승 같은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 세칭 수백 억대 재력가라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재산이지만 대선 주자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다. 사람에 따라 삐딱하게 볼 수 있는 규모고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淸富論(청부론)까지 펼쳐가며 재산을 옹호한다. 이 많은 재산은 현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나온 '성공 신화'의 대가이며, 20, 30년 넘게 부동산을 사고 판 적 없으니 투기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현대 입사 5년 만에 이사에 올라 20년 가까이 CEO를 지낸 이력에서나, 그리고 숱한 투서와 폭로를 견뎌낸 15년 정치생활에 비춰볼 때 무턱대고 시비 걸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의 말대로 역경을 딛고 일군 자랑스런 성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판 사정은 다르다. 한국 선거에서 돈이 많다는 것은 부담이다. 때로는 죄악시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심성에 흐르는 '이상한 평등주의' 때문이다. 자신의 '관용 수준'을 넘어서는 가진 자에 대해 공연히 분노하는 반감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축재를 부정의 결과로 보는 뿌리깊은 인식이다. 이런 풍토 때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선거전략이 '가난 마케팅'이다. 한 후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하면 다른 쪽은 '일찍이 조실부모하고…'하는 식이다. 표밭에서 앵벌이 호소만큼 잘 먹히는 것도 잘 없다는 얘기다. 말을 바꾸면 가진 것을 공격하는 것만큼 손쉬운 득표 방법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정당한 축재라고 발을 굴러도 별 소용없다. 지난번 이회창 씨의 패인 중 하나도 '귀족 대 서민'으로 몰아간 집중 포화 때문 이 아닌가.
이 전 시장도 '충분히' 가난했다. 포항 달동네에서 풀빵 장사로 고학을 하다 주린 배를 안고 상경한 개인사는 웬만큼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가 연출하는 '가난의 추억'이 지금의 부자 이미지를 얼마나 가릴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다른 의혹이야 사실 증명으로 방어할 수 있겠으나 있는 재산을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전 시장은 꼬박꼬박 세금 냈으며 수십 년 재산명세에 변동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당당해 한다. 그냥 둔 강남 부동산들이 큰돈이 됐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궁금하다. 쌓아 불리기만 하고 곳간의 문을 연 적은 없느냐는 의문이다. 그가 많은 인터뷰에서 기증 기부 쾌척 같은 나눔의 전력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가. 갑자기 쏟아져 나온 7, 8종의 이명박 저서를 뒤져봐도 소외 지대, 고향 발전, 장학 사업 같은 것에 사재를 털었다는 얘기는 찾기 어렵다. 혹여 오른손 모르게 베푼 왼손의 선행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 재임 당시 4년간 월급을 가져가지 않았으며, 저소득층 복지에 신경을 썼다는 얘기는 있다. 별로 공치사할 거리는 아닌 것 같다. 민선단체장의 당연한 일이고 월급 반납 사례는 시골에도 있다.
얼마 전 10년 동안 불우시설에 30억 원을 기부하며 자기 집도 갖지 않은 한 연예인이 감동을 주었다. 대중은 사회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삶을 보면 눈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 나라를 짊어질 지도자의 삶이 그러하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같은 인물이 이끌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개인사도 정치 지도자의 좋은 요소다. 그렇지만 사회 共同善(공동선)을 위해 자기희생적 삶을 살았는가 하는 건 더 눈여겨보아야 할 덕목이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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