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쓴 '나의 아버지'] 술과 아버지

입력 2007-05-03 16:58:05

통금시간이 가까워진 밤 12시.

골목끝에서 아버지의 노래소리가 들리면 우리 4남매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대문으로 부리나케 달려나갑니다.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동작이 조금이라도 굼뜬 날이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대문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를 드리면 '좋아~좋아'하시면서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시기 무섭게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오십니다. 맛있게 식사하실 동안 우리 4남매는 밥상주위에 무릎을 꿇고 기다려야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아버지의 근엄한 설교가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대학다닐때 당신이 고생한 이야기,어려서 먹을것이 없었던 이야기,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등등.... 1시간이 넘게 이어집니다. 지루한 표정을 짓거나 하품을 하거나 다리가 저려 움직일라치면 설교는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정신상태 해이'를 지적하며 설교가 자꾸 길어지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모두들 긴장해 아버지의 고생담을 열심히 듣는 척 해야만합니다. 항상 되풀이되는 레퍼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듣는 이야기처럼 진지하게 보여야 하는 이유이지요. 참으로 아버지는 우리집에서 '황제'로 군림하셨습니다.

주말이면 아버지가 하시는 큰일은 정원에 물주기입니다. 긴 호스로 물을 뿌리고 꽃가위로 가지를 몇개 자르면 아버지가 집에서 하시는 유일한 일(?)이 끝납니다. 끝나기 무섭게 아버지의 큰 기침소리에 맞춰 어머니는 술상을 대령해야합니다. 술상을 받으셔야 그제야 만족 하신듯 '캬' 하시면서 정원의 꽃들과 나무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십니다.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어릴적 기억의 전부입니다.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 어머니는 늘 뒷전이시고 당신의 재미와 멋으로 사신 아버지. 이런 아버지가 어릴때는 늘 못마땅했습니다. 단 한가지 의문을 남긴채 말입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 일 것 입니다. 지금은 시민회관이지만 그당시 KG홀에서 무용공연을 했을 때였지요. 그 공연장에 아버지가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자식에게는 관심도 없으시던 아버지께서 깨엿을 사들고 큰 키로 서 계셨던 것입니다. 깨엿을 맛있게 먹었지만 어떻게 공연장에 오시게 됐는지 그 궁금증은 참으로 오래갔습니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그날의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조금씩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애틋하다면 아버지의 사랑은 깊다는것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어려움을 맞을때마다 아버지는 늘 큰키로 거기에 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아버지는 저에게 힘이 되는 전화를 주십니다. 나이가 드셨는지 전화기의 목소리는 떨립니다. 아니 눈물이 묻어 있습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저는 그 이야기가 무슨 말씀인지 알아 듣습니다. 그리고 전화 너머에서 저를 얼마나 걱정하고 계시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전화기를 가만히 내리면 아버지의 큰 사랑에 목이 메여옵니다.

10년전 아버지가 편찮으실때 저는 기나긴 사랑의 편지를 올린적이 있습니다. 올해는 공개적으로 사랑의 편지를 드리는것 같습니다. 아버지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어 이 딸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주십시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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