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장관님! 듣기가 중요합니다

입력 2007-05-01 07:11:52

대학수학능력시험의 1, 3교시 국어와 영어 시간에는 듣기평가가 진행된다. 언어 학습은 크게 나눠서 듣기와 말하기, 읽기와 쓰기 네 분야에 걸쳐 이뤄지지만 수능에는 말하기가 빠지고, 듣기도 겨우 구색만 갖춘 정도다. 여전히 텍스트 중심인 우리 학교 언어 교육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고 해도 듣기평가에 들이는 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전에 시험장인 학교 방송시설을 대대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 당일에는 소음 방지를 위해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말라는 당부가 쏟아지고, 전투기 이·착륙까지도 제한된다.

듣기가 뭐기에 이렇게 귀찮고 불편한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싶지만,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문제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의고사부터 듣기평가를 많이 받아왔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다.

쉬운 내용인데도 듣기가 힘들다는 얘기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듣는 일의 중요함, 듣는 능력의 절실함은 세월의 변화에 관계없이 교육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목표일지 모른다. '인간의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란 탈무드의 경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얼마 전 김신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대구를 다녀갔다. 3불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며 대놓고 전국을 순회하는 길이었다. 3불 정책이라면 어제오늘 논란도 아닌데, 대통령이 몇 번 언급했다고 장관이 전국을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우습기도 했거니와 일을 진행하는 순서도 보기가 민망했다.

동대구역 도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지역 방송사. 3불 정책을 알리기 위해 어렵사리(?) 마련한 대담 프로그램 녹화 때문이었다. 잘 해 보려 든 탓인지 녹화시간이 길어져 경북도 교육청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20여 분 늦은 시간이었다. 이후 일정이 제대로 풀릴 리 없는 노릇. 장관의 첫 방문이라 꼼꼼하게 업무보고 자료를 준비했다가 간략하게 보고를 마치는 모습을 본 한 교육청 관계자는 "아무리 말하러 왔다지만 들을 생각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이튿날 일정도 마찬가지. 지역 대학 총장들과 아침 식사를 하며 3불 정책의 당위성을 주장한 김 장관은 대구시 교육청이 급하게 만든 대학입학제도 정책설명회에 참석해 3불 정책에 대해 장황하게 떠들고는 대구를 떠났다. 가는 길에 e러닝 박람회 개막식에 참가하긴 했지만 "동대구역 가까운 곳에서 열린 행사였기에 다행"이라는 씁쓸한 뒷말이 남았다.

참여정부 들어 지방분권이 강력한 이슈로 떠오르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방 사람들이 여전히 중앙 정부를 믿지 못하는 건 바로 이런 말하기 중심 정책 탓이다. 권한을 나눠 줄 생각도, 의무를 함께 떠안을 생각도 없으니 들을 게 없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중앙정부 공무원 뽑을 때, 장관 임명할 때 사전에 듣기평가 한 번쯤 치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면 지나칠까.

김재경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