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벌만 바라보았더니, 벌이 내게로 와 꿀이 되더라
칠곡 동명면 학명리 '안상규 벌꿀 박물관'.
양주병처럼 화려한 얼굴을 한 꿀병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선물용으로 선호를 받으면서 꿀병도 고급스럽게 진화했다. '안상규벌꿀'의 주요 영업전략 중 하나다.
박물관 안에는 벌꿀 채집도구들과 다양한 종류의 벌집들, 벌통, 모형 벌의 모습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쪽엔 '쉼터'를 마련, 손님들에게 벌꿀차를 무료로 제공한다. 매장에선 벌꿀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신뢰감을 제공하고 나서야 벌꿀을 소개한다. 누군가 "진짜꿀이냐?"고 물으면 그 사람에게는 판매하지 않을 정도다.
'벌수염 사나이' 안상규(46·칠곡 동명면 학명리) 씨는 벌수염 부문 한국 기네스북 기록자이며 자기 이름의 벌꿀 브랜드를 가졌다. 양봉분야 국내 최초로 제2건국위원회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3월이 되면 그는 야인으로 돌변한다. 3월 제주도 애월의 유채꽃, 5월 경북 칠곡과 의성에서 '아카시아꿀', 이어 경기도 용인, 강원도 철원 민통선이 일 년 동안의 궤적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로열젤리와 종봉 분양을 위한 벌 증식작업. 9월 말에서 11월 초 본거지인 칠곡 동명 학명리에 돌아와 월동준비를 한다. 올해 벌통 수는 모두 780개. 81년 23개로 시작했었다. 3천만의 벌 식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셈이다.
"0.2g에 불과한 벌이 자기 몸의 2배나 되는 0.4g의 꿀을 지니고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과 1kg의 꿀을 만들기 위해 벌이 꽃 560만 개나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외심마저 갖게 됐어요."
대구농고 1학년 때 처음 벌을 본 순간 그는 첫눈에 벌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 시절엔 교과서 공부하는 대신 하루에 벌만 10시간씩 쳐다봤다고 한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양봉을 시작했으나 시련도 적잖았다.
스물여섯 살이던 87년 경북 영양 강가에 벌통을 벌여놓고 있던 중 셀마 태풍이 불어닥쳤다. 6년 동안 피땀으로 일군 벌통 180개가 하룻밤 새 황톳물에 쓸려갔다. "다시는 꿀벌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이듬해 봄 꽃이 피기 시작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 농협에서 종자돈을 빌려 다시 벌통을 마련했다. 88년엔 건국 이래 최고의 꿀 풍년이 든 해. 50통 벌통에서 400통 이상의 수확을 누린 해다. 20리터 병 800개를 수확해 강원도에서 오는 도중 꿀의 무게를 못 이겨 8번의 펑크가 났다.
꿀벌 붙이기는 그의 집념을 보여준다. 95년 뱀을 가지고 묘기를 부리는 약장수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96년 얼굴에 벌수염 붙이기를 시작하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듬해 온몸에 벌을 붙이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20여만 마리의 벌을 붙이고 번지점프까지 했다. 그동안 국내외 각종 방송 출연만 150회에 이른다.
"온몸에 벌을 붙일 때마다 쏘지 않는가? 쏘이면 아프지 않은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 번 할 때마다 평균 100방씩 쏘입니다."
벌에 한 방을 쏘이고 사망하는 사람도 있고 500kg 황소도 한꺼번에 250방 정도 쏘이면 즉사하는 게 벌침 독의 위력이지만 이젠 면역이 생겨 괜찮다고 그는 웃는다.
원대한 포부도 갖고 있다. 일종의 대안학교인 '양봉비즈니스 스쿨'을 설립하는 것이다. 또 미국과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양봉 선진국에 진출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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