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방짜유기 박물관

입력 2007-04-02 11:18:15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새로움, 거기다 역사의 더께가 고이 내려앉은 박물관에서 아득한 세월 건너편 옛사람들의 체취를 느껴보는 것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박물관은 또한 어떤 국가나 지역의 문화 수준을 재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는 자긍심에도 불구, 우리의 박물관 문화수준은 아직 척박하다고밖에 할 수 없겠다. 현재 국내의 박물관은 모두 400개 정도. 절반가량은 국·공립 박물관이나 대학박물관, 나머지는 사립 박물관이다. 일단 수적으로 너무 빈약하다. 일본만 해도 전국적으로 6천여 개의 박물관들이 산재해 있다. 오사카'교토의 박물관 수만도 400개가 넘으며, 각 지방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촘촘히 널려 있다. 게다가 우리 국내 박물관들은 이거나 저거나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다. 한국이 전세계 여행자들로부터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데는 특색 있는 박물관이 없는 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오는 5월 23일 개관할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한가닥 기대감을 갖게 한다. 팔공산 길목 대구시 동구 도학동에 자리 잡은 이 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77호 이봉주 선생이 수집'제작한 방짜유기들로 모두 280여 종 1천480여 점을 전시하게 된다.

'방짜鍮器(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대 22로 섞어 1천200℃ 넘는 온도에서 끓인 뒤 수없는 망치질로 두드려 펴고, 우김질로 틀을 만들고, 닥침질과 담금질, 벼름질,가질 등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여덟 가지 공정 끝에 만들어진다. 그 독특한 합금 비율은 현대 재료공학으로도 풀지 못한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다. 농약 묻은 채소나 과일 등을 넣으면 그릇 색이 변해 '생명의 그릇'으로 불린다. 방짜는 징'꽹과리 같은 우리 전통 타악기의 유일한 제작법이기도 하다. 간신히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방짜 기술의 앞날이 걱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방짜 박물관은 50여 년간 외로운 길을 고집스레 걸어온 '이봉주'라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국 유일의 방짜 전문박물관 등장으로 우리 지역도 자랑할 만한 박물관 하나 갖게 됐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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