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무기는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말은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무기보다 더 막강한 말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어떤 말은 사람이나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힘이 센 모양입니다. 반면에 세상의 크고 작은 갈등이나 폭력은 사람들이 온전하게 말을 할 수 없거나 혹은 온전한 말이 귀에 들리지 않을 때 일어나는 불상사 같기도 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람이 사람의 말에서 배울 수 없다면 결국 고난이나 고통이라는 혹독한 체험을 치르고서야 배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멕시코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말'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한낱 반란군 게릴라의 말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아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의 말은 무디고 안일한 정신에 따끔한 회초리처럼 감겨들기도 합니다. "존엄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그것은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니다...존엄하게 살지 않으면 존엄은 죽는다."
아닌게 아니라 '사고 팔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매겨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존엄을 잃지 않고 사는 걸까요? 경제성장만이 오로지 신앙처럼 받들어지는 세상에서 부와 빈곤은 왜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걸까요?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빈곤은 줄어들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더구나 부는 왜 갈수록 소수로 집중되고 빈곤은 점점 널리 재분배될까요? 그래서 마르코스는 전 세계의 모든 '진실한 남자와 여자들'에게 이렇게 외쳤던 걸까요? "돈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무기에도 불구하고, 전횡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헤게모니를 쥐고 모든 것을 균질화 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덫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니!'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 이라고 말해야 한다" 고.
'사파티스타' 운동은 경제의 세계화와 억압적인 정치구조에 맞선 멕시코 인디언 원주민들의 생존투쟁 운동이라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권리, 좋은 정부를 가질 수 있는 권리, 타인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 정당한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존엄한 삶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그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지요. 그들은 '시민의 힘'이 진정한 권력의 근원임을, 권력은 위에서가 아니라 바로 풀뿌리 민중인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호소력 있는 서신과 성명서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확산되어 마침내 세계적인 '저항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거대한 반(反)세계화 운동을 있게 한 초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혁명적 저항적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투명하고 따뜻하며 아름다운 문학적 울림으로까지 다가옵니다. 이 독특한 '말'의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요? 다행히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딱정벌레 '두리토'의 입을 빌린 이 문장을 읽으며 과연! 하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 우리는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그 투쟁에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종종 잊고 있어." 세상(외부)의 변화를 위해 한 생을 바치면서도 동시에 자신(내면)의 변화 또한 필수임을 알고 있었던 그는 역시 '뛰어난' 게릴라임에 틀림없습니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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