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이 부쩍 일고 있다. 글쓰기가 새삼스레 화두가 된 배경에는 논술이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일은 논술뿐 아니라 공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글쓰기를 아주 골치 아픈 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외워서 답만 맞추면 그만인 시험 위주 교육에서 생각의 나무가 자랄리 없다. 수행평가를 위한 글쓰기는 그나마의 흥미를 반감시키기 일쑤다.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에게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을 물어보면, 예외없이 나오는 대답이 "에세이 쓰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미국 공교육의 저력은 글쓰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들어 대구시 교육청이 '삶 쓰기 100자 운동'을 초·중·고교에서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그 다음 단계는 '어떻게 쓰느냐'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자신의 생활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정직하게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방학 일기 숙제를 쓰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정직한데 왜 이렇게 일기 쓰기가 어려울까.' 하고.
'헨쇼 선생님께(비벌리 클리어리 글/보림 펴냄)'라는 책을 골라 읽었다. 책의 주인공은 리 보츠라는 이름의 6학년 소년. 대형 트럭을 운전하며 대륙을 횡단하는 아버지와 출장 요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머니는 소년이 어릴 때 이혼을 해 가끔씩 전화 연락을 하는 정도다. 책은 소년이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헨쇼라는 작가에게 보낸 편지와 일기로 엮어져 있다. 교실에서 도시락을 자꾸 도둑맞는 일이라든지, 이혼한 아빠에 대한 섭섭함, 애완견을 잃어버린 일 등 주인공의 고백처럼 '평균치 소년'의 일상이다. 미국적 정서에 대한 생경함도 있겠지만 도무지 클라이막스 없이 이어지는 소년의 하루 하루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연거푸 두 번을 읽었을 때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감이 왔다. 우리네 삶은 사실 고만고만하고 소소한 것을. 픽션을 쓰지 않는 다음에야 일상은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정직한 글쓰기는 꾸미지 않는데서 시작하는 법이니까.
'헨쇼 선생님께'의 어린 주인공은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는 대상이 달라지게 된다. 6학년이 된 무렵부터 작가 선생님에게 보내던 편지는 리 자신에게 쓰는 일기로 바뀐다. 글짓기 대회에 '3m 짜리 밀납 인간 이야기' 따위를 쓰려던 리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소재, '아빠 트럭을 타고 양조장에 따라간 날 이야기'를 순식간에 써 내려간다. 가작에 뽑힌 상으로 여성 유명작가를 만나게 된 리는 이런 얘기를 듣는다.
"너는 다른 사람을 흉내내지 않고 가장 너답게 글을 썼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한참 뒤에 생기는 거야. 살면서 얻는 경험이 더욱 풍부해지고 이해하는 힘도 깊어졌을 때 생긴다는 뜻이지."
어린 소년은 이제 다른 사람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글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훌쩍 성장했다. 1984년 뉴베리상 수상작이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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