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린다

입력 2006-12-30 07:39:51

어느새 병술년 한 해가 저문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수식어가 올 해도 예외는 아닌듯 싶다. 나라 안팎은

물론 개인에게도 크고 작은 일들이 즐비하였으리라. 한 해가 저문다는 것은 회한과 설레임을 동시에 안겨준다.

서산에 노루꼬리처럼 저무는 해를 바라보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의 미진함은 새해의 희망으로 다시 채우자.

우리네 선조들은 현명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을 두부모 자르듯 초와 분 그리고 시간으로 토막내어 하루, 한 달, 일 년으로 구분해 두었으니 말이다. 눈으로, 손으로도 만질 수없는 시간이란 괴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흘러간다.

마지막 남은 일력(日曆) 앞에서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한 해,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던가. 과연 나는 남에게 비난받을 짓을 하지는 않았던가. 과연 나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던가를 조용히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미국 켈리포니아주 화이트산에 '드무셀라노인'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살고 있다. 해발 3천미터의 눈덮인 고산 위에서도 이 소나무는 무려 4천6백년이나 살고 있다고 한다. 한자리에 앉아서 뭉기적거리며 반만년을 꿋꿋하게 살아남았으니 기적에 가깝다.

어디 그 나무 뿐이겠는가. 어느 나무나 자신이 뿌리 내린 지상이 세상의 중심이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험난한 세상을 자중자애(自重自愛)하며 살아야한다. 어머니의 품처럼 서로 안아주고 토닥여주면서 이 한해를 따스하게 마무리했으면 싶다.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 존 단은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륙의 일부분일 뿐,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고, 모래톱이 그렇게 되어도, 그대들의 친구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이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인 것.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므로.'라고 노래하였다.

그렇다. 아무리 살기가 힘들어도 새해에는 종은 누구를 위해서 울린다고 묻지 말라. 종은 분명 그대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울린다. 새해에는 더 새롭게 일어서자.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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