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아홉수들의 결심은?

입력 2006-12-23 07:32:02

▲ 스물아홉 처녀 이미영 씨

"또 하루 멀어져 간다/내뿜은 담배연기처럼/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스물아홉 이미영(동아쇼핑 아동복코너 근무) 씨는 요즘 노래방에 가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즐겨부른다. 미혼인 이 씨는 요즘 가족과 주변의 결혼 압력을 받고 20대 초반의 팽팽한 여성들을 바라보면서 괜히 새침해지고 우울해진다.

"20대 중반일 때는 설마 내가 서른살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0이라는 숫자는 너무나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우울해서 포장마차를 찾아 혼자서 소주를 마시는 일도 잦습니다."

얼굴에 하나둘 늘어가는 잔주름도 신경쓰인다. 이 씨에게 올해는 다사다난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하는 등 '스물 아홉 홍역'을 톡톡히 치뤘다. 주위에서 액땜으로 생각하라 하지만 아찔하기만 한 기억이었다. 이 씨의 가장 큰 고민은 가장 큰 고민은 결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든다.

이 씨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직장 선배인 이주영(32·여) 씨. "3년전에 스물아홉살이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큰 고민은 없었습니다. 결혼을 일찍 했기 때문에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느라 정신없었죠. 서른이 되면서 달라진 것이 많았습니다. 나이 먹는 것이 속상하겠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영 씨는 또 "가정이나 직장이나 문제가 생기면 순탄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행복감을 느끼는 만큼 힘들더라도 이겨내라."고 조언했다.

이미영 씨는 "연말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스물아홉을 돌아보면서 조용하게 보내고 싶다."면서 "서른살이 되면 좀더 책임감있게 직장생활도 하고 어른이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생활하겠다."고 웃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 서른아홉 자영업 권영권 씨

당신이 '아홉수'마법에 걸려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이 당황스럽거나 아홉수를 의식하기보다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 혹은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인쇄업을 하는 서른 아홉의 권영권씨(아이&피 대표)에게 아홉수가 주는 열병은 없다. 대학 졸업후 부친이 하던 인쇄업에 뛰어들어 앞만 보고 달려온 지 14년. 그는 "지금까지 부모님께 기대 살았고 내 주관대로 산 것은 불과 십수년에 불과했다."며 "불혹(不惑)의 나이(40)부터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보겠다."고 말했다.

같은 나이의 김정혜 씨는 다르다. 전업주부인 김씨는 해가 바뀌는 연말이 다가온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과 별반 차이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자신에 대해 회의가 밀려온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이뤄놓은 것도 없이 마흔을 맞기가 두렵다. 또 남편이나 가족들로부터도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가끔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라고도 말했다.

그렇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반환점과도 같다. 평균수명이 60에서 80으로 연장된 요즘, 마흔은 청춘이다.

권씨는 올해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아마도 내년이면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배운 골프에도 몰두하고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그에게 서른아홉이란 나이는 제2의 청춘의 시작이다.

권씨는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달라진다."면서 "일어나는 일이 대동소이하다면 그건 관점의 차이이며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마흔아홉 주부 김미자 씨

지천명(知天命)이라는 쉰(50)을 코앞에 둔 49세들. 같은 40대라도 마흔아홉은 그 무게가 엄청나도록 무겁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얘기다.

마흔아홉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뤄놓은 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50이라니...."하는 자괴감. 주영경(공무원) 씨는 "내가 마흔아홉살이라니 세월 빠르다는 말만 되뇌일 수밖에 없다."며 "나이는 먹고 벌어놓은 재산도 없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은 게 동년배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불혹(40)의 마지막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들의 또 다른 고민은 건강. 김미자(주부) 씨는 "나이의 무게 탓인지, 아니면 마음이 심란한 탓인지는 몰라도 몸이 많이 아픈 나이"라고 했다. 주 씨는 "스트레스 탓에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등 병을 갖고 있거나 약을 달고 사는 동년배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자녀들의 진학 및 취업 문제도 마흔아홉들의 고민 중 하나다.

아홉수 나이 가운데 유달리 넘기가 힘든 '마흔아홉 고개'를 슬기롭게 넘는 방법은 뭘까. 얼마전 남편과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한 김 씨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마흔아홉이란 나이의 무게를 떨쳐버리고 있다. "남편이 동갑이어서 49세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하고 있어요. 49세란 나이는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시기인 만큼 남편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부부간 갈등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남편을 '인생의 친구'로 삼아 50 이후의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지요."

공무원 주 씨는 건강을 다지기 위해 축구 등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50을 바라보게 되니 가족 화목이나 형제들간의 우애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운 나이인 만큼 지금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거기에서 보람을 찾아야지요. 과거에 대한 회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는 것이 마흔아홉이지만 마음을 다잡고 활기차게 살아가려 애를 씁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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