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원한 소방용사"…전직소방관 황타관 씨

입력 2006-11-09 08:56:58

"한번 소방관은 영원한 소방관입니다."

지난 1995년,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져 소방복을 벗어야 했던 황타관(63) 씨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소방관으로 살고 있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왼쪽 몸이 마비됐고, 말하기도 힘겨운 상태였지만 소방관 시절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기운이 넘친다. 부인 김옥자(63) 씨는 "아직도 사이렌 소리만 나면 지팡이를 짚고 뛰쳐나간다."며 "남편은 지금도 자원봉사라도 좋으니 소방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1968년 25살 때 소방관이 된 황 씨는 30여 년 동안 불구덩이를 누비며 시민들의 목숨을 구했다. 82년 북구 산격동 주택화재 땐 무너지는 지붕을 온몸으로 막아 두 살배기 아기를 구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엔 그때 화상 자국이 아직까지 훈장처럼 남아 있다. 76년 동아백화점 2차 화재 때는 번지는 불길 경로를 미리 파악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공을 세웠다.

이런 활약으로 그는 대구시 목민 봉사상을 7번 받았고 내무부 장관상, 소방학교 표창장, 라이온스 표창장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다. 전국소방기술경연대회에선 3회 연속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부상으로 받은 대형소방차를 대구시에 안겨주기도 했다. 78년에는 '인명구조특공대'(현 119 구조대)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 씨는 정작 자신을 지키는 데는 서툴렀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데 온 정신과 힘을 쏟았던 나머지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하고 결국 병을 얻게 됐다. 30여 년간 수많은 화재 현장에서 마신 유독가스가 그의 뇌혈관을 막아 버린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7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소방관이 적용되기 2년 전 쓰러져 황 씨는 병원비 등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

황 씨에게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5개월분의 월세가 밀려 있는 것. 부인 김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받는 월 40만 원으로는 도저히 월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젊은 시절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토록 고생한 남편에게 제대로 된 약 한 첩 지어 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황 씨는 "비록 가난 속에서 눈을 감겠지만 소방관으로서의 삶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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