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달린다)실업계고 예비 졸업생

입력 2006-11-07 07:03:03

'일반계고 간 친구들 부럽지 않아요'

실업계 고교에 진학해 목표했던 성과를 거두고 대학과 직장으로 진출하게 될 3학년생 4명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중학교 졸업 때 일반계고에 갈 성적이 충분했지만 소신을 갖고 실업계고를 선택했다. 실업계에 대한 편견 속에서도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까지 꿋꿋하게 남 모르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성공을 얻었다.

▲ "삼성맨 됐어요"

고교 3학년생 정은준(18·대구전자공고 전자과) 군은 이달 말로 다가온 출근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정 군은 지난 5월 삼성테크윈에 합격했다. 카메라 렌즈,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는 일에 배치된 것이다. 1일 3교대 근무하면서 연봉 2천700만 원을 받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지난 달 중순에는 10일간 회사가 있는 창원에서 사전연수를 받았다. "선배들도 다 좋고, 시설도 대단하고... 무엇보다 제가 우리 학교에서 삼성테크윈에 합격한 첫 사례여서 뿌듯합니다."

이제는 대학 졸업자도 부럽지 않지만 정 군 역시 실업계고 진학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은 때가 있었다. "중2때까지만 해도 인문계로 갈 생각이었어요. 성적도 반에서 중위권이었으니까 자격은 됐죠. 하지만 실업계고에 가면 취업은 물론이고 공부만 조금 하면 내신 따기도 쉬워 대학 진학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했어요."

정 군은 고1 때부터 '삼성맨'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삼성을 목표로 학교 성적도 착실하게 관리했다. 평소 수업시간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열중했고 중간·기말 고사 때는 밤 늦도록 책을 덮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정 군의 고교 내신은 상위 3%이내다.

삼성 취업에 필요한 직무적성검사(SSAT)는 2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에 충분한 시간을 쏟았고 한자공부도 열심히 했다.

정 군은 "일반계고에서 월등히 뛰어날 자신이 없다면 실업계고 진학도 고려해 볼만 한 것 같다."며 "실제 공고에 와보니 대부분 학생이 진학에도 뜻을 두고 있기 때문에 면학 분위기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 "증권우먼 어때요?"

이숙현(18·제일여자정보고 경영정보과) 양은 요즘 범어동 CJ증권 대구지점 창구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창구를 찾는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입·출금 업무가 이 양의 일이다. 친절히 응대하는 얼굴에는 미소가 환하다. 자신감도 가득 차 있다.이 양은 지난 7월 이 회사에 합격해 이달부터 현장 적응 훈련 중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합격자 19명과 연수를 받았는데요, 전부 실업고생이었요. 특히 서울·경기지역 학생들이 많았는데 학교 성적도 뛰어나고 실업계고 진학에 대한 소신도 우리 지역과는 달리 긍정적이었어요."

이 양의 중학교 내신은 상위 40% 정도. 진로를 실업계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많이 말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양은 소신을 택했고 3년을 보내는 동안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 중에 일반계고 간 친구들이 그래요, '책가방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고. 요즘에는 수능을 앞두고 밤 늦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안쓰럽기도 해요."

이 양의 고교 내신성적은 5%이내. 이런 결실을 거둔데는 나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이 양은 실업고 적응을 위해 중3 겨울방학 때부터 입학전까지 3개월간 열심히 회계학원에 다녔다. 생소한 상업용어들을 그 때 미리 익힌 것이 학교 수업에 큰 도움이 됐다.

자격증도 틈나는 대로 땄다. 전산회계운용사, 컴퓨터 활용능력, ITQ 파워포인트, 워드프로세서 등 7개나 된다. 방과 후 학원에 다니면서 강의를 듣고 문제집을 풀었다. "지금은 부모님도 대견해 하세요. 나중에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경제학이나 회계학을 꼭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 "사장님이 꿈이예요"

이정성(18·대구여자상업정보고 경영과) 양은 요즘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아 하루 하루가 뿌듯하다. 이 양은 지난 4월 구미 삼성전자 생산직 사원으로 합격했다. 이 양의 꿈은 '사장님'이 되는 것이다. 1학년 때부터 교내 창업동아리('과학 비즈쿨') 활동을 하면서 성인이 되면 꼭 내 가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했다. 사업 아이템은 요즘 각광받고 있는 천연오일을 활용한 제품들이다.

"아로마 양초나 천연비누를 주로 만들었어요. 비누는 3천 원, 입술 튼 데 바르는 보습제는 500원에서 2천 원까지 재료값만 받고 팔았습니다. 손님은 친구들이나 선생님이었는데 학교 행사 때 학부모님들도 많이 사 가셨어요.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데요."

포도씨앗이나 장미씨앗에서 추출한 오일을 증류수와 섞어 한 개의 비누가 완성되기까지 보통 한 달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비누를 만드는 일은 너무 즐거웠다.

"요즘 성인 아토피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니까 건강에도 좋고 각자의 피부에도 맞는 천연비누를 만든다면 잘 팔리지 않을까요?"

이 양은 스스로도 창업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엉뚱한 시도도 많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대구 교동시장에서 구제(중고) 옷을 도매로 받아 친구들에게 팔 생각도 해봤다. 이 때만 해도 의류 유통업에 관심이 많았다. 보석공예 하는 친구와 동업도 연구해 본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도 찻집이나 음식점 서빙, 피자배달, 토스트 가게 점원, 전단지 배달, 사무보조 등 해보지 않은 게 없다.

이 양은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본어도 배우고 있고 전자상거래 공부도 하고 있다."면서 "창업을 생각하는 고교생들을 위해 '비즈쿨' 같은 프로그램을 장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생명공학자 될래요"

류인경(18·대구자연과학고 생명공학과) 양은 지난달 경북대 농대 수시모집 1차에 합격했다. 수능을 따로 치러야 최종 합격이 결정되지만 류 양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실업고에 진학해 여대생에 도전하기까지 이 양은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알고 꿈을 잃지 않았다.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고사리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식물과 자연이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흙을 파고 씨앗을 뿌리는 일은 정직하고 매력적인 일이었다. 실업고 진학에는 부모님의 권유도 한 몫 했다.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추천하셨어요. 중3때 선생님도 제 의지가 워낙 뚜렷하니까 오히려 용기를 북돋워 주시던 걸요."

이 양은 자연히 학교 실습시간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 주에 3, 4 차례 유리온실에서 야생화를 키워보고 조직 배양실에서 난을 배양해 보기도 했다. 꽃에 관심이 많다보니 국화 꽃꽂이를 배운 적도 있다.

"생명공학의 기초라는 과목이 있어요. 화초를 키우거나 종자를 배양하는 내용인데 식물이 자라는 모습만 봐도 뿌듯해요.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이 양의 고교 성적은 과에서 상위 10% 이내. 3학년에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언어·수리·외국어 공부를 했는데 대학에서 실업계 학생을 따로 선발하기 때문에 지금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기대했던 결과를 얻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양은 "진학을 원하는 실업고 학생들은 수능 준비 때문에 요즘 자정까지 공부한다."면서 "성적을 떠나서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실업고로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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