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곡초등학교 6학년 민송(12·여)이, 정호(12), 5학년 정은(11·여)이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영어 도사다. 세 명 모두 교내 영어 말하기·에세이 쓰기 대회에서 1등을 했거나, 'Jr. G-TELP(초·중학생 영어활용능력 평가시험)'에서 1등급을 받는 등 남다른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토종 영어파'. 3, 4세 때부터 영어일기를 쓴 영재도 아니고, 외국에는 가본 적도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이지만 또래들이 부러워할 만한 영어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영어와 친해진 것일까.
◆조기영어, 이렇게 시작했다
민송이는 여섯 살 때 네 살 많은 오빠를 통해 영어와 처음 만났다. 오빠가 읽는 영어 교과서를 어깨 너머로 보면서 영어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 "외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어요. 교과서에서 배운 문장으로 대화를 하고 게임도 했어요." 민송이의 영어공부 방법은 '재미있게(Have fun!)'였다. 오빠와 영어단어 맞히기 게임도 하고 문장을 가린 채 알맞은 단어를 끼우는 놀이도 했다. 학교에 들어와서는 '니모를 찾아서'처럼 만화 주인공이 나오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주인공의 동작을 따라하며 그와 일치하는 영어 단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어머니 박진희(43) 씨는 "우리말을 먼저 알고 있으니까(민송이는 세 돌 때부터 책을 읽었다) 영어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다."며 "아이가 원할 때마다 영어 자막이 된 비디오를 구해줬고, 담임 선생님께 추천받은 영어동화책은 아낌없이 사줬다."고 말했다.
민송이의 영어 실력은 3학년 때 영어 교과서와 처음 만나면서 부쩍 늘었다. 교과서에 달려 나오는 부록 CD를 알뜰하게 활용한 것이다. 그날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은 집에 돌아와서 꼭 CD를 틀어놓고 확인했다. 짧은 문장을 따라 읽더라도 'f'나 'v'처럼 우리말에 없는 발음은 귀 기울여 몇 번이고 따라 읽었다. 엄마와 함께 영어챈트(동요)도 흥얼흥얼 부르며 원어민 억양을 흉내냈다.
민송이는 5학년 때부터 영어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다 보니 일상적인 감정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표현을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저절로 영어사전을 뒤지게 됐다. 5학년 때 치른 'Jr. G-TELP'에서 중학생에 버금가는 1급을 딴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었다. "외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민송이는 요즘 토플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정은이는 지난 여름 교내에서 열린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학년 1등을 차지했다. 일곱 살 때부터 엄마와 놀듯이 영어와 친해진 덕분이다. "apple로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빨간 모자'도 함께 읽었어요."
정은이의 영어 실력 뒤에는 탄탄한 독서가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영어 동화책만 100권을 훌쩍 넘는다. 주로 원어민의 읽기 테이프가 딸린 동화책을 이용해 듣고 따라읽기를 반복했다. "'갈색 소(brown cow)'라는 동화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어느 농장의 갈색 소가 주인공인데요, 예의 바른 사람에게는 하얀 우유를 줬지만 욕심 많은 사람에게는 초코 우유를 줘서 골탕먹였대요. 정말 우스웠어요." 갈색 소는 정은이의 말하기 대회 소재가 됐다. 외운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느낀 감정대로 친구에게 얘기하듯 장면을 떠올리며 발표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정호는 지난해 성균관대에서 열린 초등학생 영어경시대회에서 입상했고, 올해 9월에는 교내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정호가 영어에 맛을 들인 것은 3학년 때 영어 교과서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영어 교과서 CD를 반복해서 따라 읽은 다음 받아쓰기를 하거나 빈 칸에 알쏭달쏭한 단어를 채워 넣었어요." 영어 CD는 예습, 복습에 딱 좋은 교재였다. 학교 수업은 자연히 재미있어졌다. 6학년이 되면서 '공룡'이나 '고래'처럼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는 어린이 영어 과학동화를 찾아 읽게 됐다. 정호는 "회사에서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아버지도 영어를 많이 가르쳐 주셨고, 1학년 때부터 받아본 영어 학습지도 큰 도움이 됐다."면서 "다른 과목처럼 영어도 억지로 배워서는 오랫동안 흥미를 갖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2008년 초교 전면 영어실시, 어떻게 준비할까
대구에서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교육 연구학교는 복현초, 경운초, 화동초 등 모두 3곳. 1학기 때 공통 교재 개발에 들어가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재득 복현초 교감은 "1, 2학년 영어수업을 참관해 보면 평균적인 듣기, 말하기 수준이 고학년 못지 않다."며 "한국 어린이에 맞춘 교재와 원어민 보조교사를 활용한 수업으로 학교에서도 사교육 못잖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선혜 경운초 영어전담교사는 "저학년 때는 과도한 문자교육보다 영어동요 따라부르기, 영어 동화책과 친해지기 등을 통해서 영어와 놀이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지나친 선행학습은 오히려 저학년 영어수업의 흥미를 떨어뜨릴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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