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설사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그 불효를 동해 물결로 용서하십시오.'
지난 98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뗏목을 타고 발해의 해상 무역로를 따라 일본 오키섬까지 갔다가 뗏목이 좌초돼 불귀의 객이 된 고 이덕영(당시 50세) 선장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어머니께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비는 글을 남기고 갔다.
이 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독도를 푸르게 가꾸고, 전국 사찰과 서울 인사동 등지에 토종 식물을 보급하는 운동에 힘썼다. 일찍이 토종은 아름답고, 힘이 세고, 맛이 있다는 '토종사상'에 눈 뜬 결과다. 또 정확하게 20년 전 산삼이 나지 않는 산은 우리의 산이 아니라고 생각, 전국 산에 묘삼을 심는 이른바 '농(農) 심마니' 운동을 펼쳤다. 울릉도 사람들은 이 씨를 귀인(貴人)이라고 여기고, 농심마니 회원들은 지사(志士)라 불렀다.
29일 울릉군 석포리 일명 정들포에 있는 이 씨의 생가에서 장남 병호(26) 씨가 참석한 가운데 농심마니 (회장 박인식) 회원 40여 명이 고인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식을 가졌다. 추모식이 열린 이 씨 생가는 죽도가 지척에 보이고 맑은 날이면 멀리 독도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이날 추모식과 함께 매년 봄, 가을에 전국 산에 묘삼을 심는 40번째 행사도 열렸다.
이 씨의 17년 전 유언에 따라 장승 2개와 함께 세워진 추모비에는 '첫 새벽 동쪽 끝에서 온 발해와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물려받은 분'이라고 새겼다. 이 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지 보름 만에 부인 김임숙 씨마저 교통사고로 사망한 기구한 운명을 헌시와 헌사, 피리와 기타 연주로 회상하던 농심마니 회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농심마니 회원인 권경업 씨는 헌사를 통해 "그는 진정한 발해인이었고, 고구려 유민이었다."며 "30년 전 어떻게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영토분쟁을 예상하고 독도에 나무심기 운동을 벌였는지 놀랍다."고 했다.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초대회장이었던 이 씨는 당시 '국제해양법상 독도가 암초가 아니라 섬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물과 사람과 나무가 있어야 하지만 나무가 없다.'며 나무심기사업을 벌였다.
박인식 농심마니 회장은 "이 씨는 독도를 지키고 토종식물을 번성시키고 발해와 고구려의 역사를 지키는 책무를 우리에게 남겼다."고 울먹이며 "농심마니 운동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국기자 huhy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다시 보이네 와"…참사 후 커뮤니티 도배된 글 논란
"헌법재판관, 왜 상의도 없이" 국무회의 반발에…눈시울 붉힌 최상목
전광훈, 무안공항 참사에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것" 발언
음모설·가짜뉴스, 野 '펌프질'…朴·尹 탄핵 공통·차이점은?
임영웅 "고심 끝 콘서트 진행"…김장훈·이승철·조용필, 공연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