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한적한 시골마을 홀로 즐기는 재미

입력 2006-10-28 16:51:47

20년여 년을 대구에서 공부하며 콩 튀는 듯한 생활도 훌쩍 지나고 또 다른 세계인 도시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훌쩍 뛰며 근무하다가 이젠 산촌의 끝자락으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근무지는 봄의 전령인 벚나무가 동양화처럼 아름다웠다면 만추의 큼직한 은행나무는 가을을 배경으로 금빛가루를 흩날리며 웃는다.

이에 질세라 밤나무 잎이며 감나무 잎도 색 바랜 얼굴로 훔쳐보고 있다. 을시년스러운 사택 앞에 허리 굽힌 채 억지로 서 있는 듯한 단풍나무 한 그루는 새벽의 새소리에 잠을 깨어 문을 조금만 열어봐도 하얀 내 차를 무대 삼아 살며시 웃으며 인사한다. 화려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 가뭄의 가을을 이겨낼 힘도 없으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점심이 되면 따스한 햇살을 큰 나무에게 다 빼앗겨버려도 좋은지 그냥 알몸으로 몇 개 남은 나뭇잎을 흔들거리며 웃고만 있다.

밤이 으쓱하여 이 밤을 어떻게 지낼까 싶어 걱정스레 창문을 소리 없이 조금만 열어봐도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대낮에 담아놓은 가냘픈 손으로 따스함을 보내면서 단풍놀이 가지 않고 자기를 챙겨주는 감사함에 이슬을 모아 눈물을 만든다. 인근의 손꼽히는 단풍놀이보다, 그리고 기암 절벽 속에서 몸매를 뽐내는 단풍나무보다 나와 숨쉬는 한줌의 단풍나무, 함께 보는 24시간의 단풍놀이 색깔이 더욱 진하고 귀엽기만 하다.

이용대(경북 김천시 부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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